‘굴욕 대신 은퇴’ 종범신의 서글픈 승부수
입력 2012.04.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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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일주일 앞두고 갑작스러운 은퇴
선 감독과 불편한 동거, 결국 이별로
타이거즈의 두 레전드 선동열과 이종범은 공존 대신 이별의 길을 택했다.
KIA 타이거즈의 레전드 이종범(42)이 19년간의 현역생활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며칠에 불과했다.
KIA는 지난달 31일 “이종범이 코칭스태프와 면담을 갖고, 은퇴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갑작스럽게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동안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은퇴 수순을 밟았던 것을 감안하면 무척 이례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이종범의 은퇴는 올 시즌 새롭게 KIA에 부임한 선동열 감독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삼성 시절부터 ‘젊은 피’의 활약을 중시해온 선 감독은 베테랑들의 이름값 내세우기를 극도로 경계하는가 하면, 후배들과의 경쟁을 거쳐야만 주전 자리를 확보해 줬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양준혁과 김한수가 옷을 벗었고,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박진만은 이적을 결심했다.
따라서 지난 시즌 후 KIA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에도 이종범과의 상생 가능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선 감독은 “베테랑의 역할이 중요하다. 팀의 고참으로서 해줘야할 역할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한 기대도 있다”며 가능한 대화를 많이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종범도 “감독님과 선수들 사이에서 분명 내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팀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동계훈련과 전지훈련 등을 거치며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고, 두 사람의 공존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선동열 감독은 이순철 수석코치의 입을 빌려 ‘개막전 엔트리 제외, 2군행’을 이종범에게 통보했다. 그동안 쭉 지켜본 결과 전력 외 기량이라고 판단, 사실상 은퇴를 권유한 셈이었다. KIA 구단도 2군서 플레잉 코치로 뛰거나 은퇴식과 코치직 보장, 해외 연수 등 선 감독의 뜻을 존중해줬다.
그러나 이종범의 대답은 ‘노’였다. 이미 선동열 감독의 올 시즌 구상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지워진 이상 1군 경기 출전은 고사하고 1군 복귀 또한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굴욕적으로 현역생활을 이어가느니 차라리 은퇴를 선언,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겠다는 답을 구단 측에 전달했다.
이종범의 승부수는 곧바로 야구계에 핵폭탄급 후폭풍으로 몰아쳤다. 비난의 화살은 당연히 선동열 감독과 KIA 구단 측으로 쏠렸고, 원치 않은 은퇴를 선언한 이종범에게는 동정여론이 일었다.
그렇다면 선동열 감독의 판단은 적절치 못했던 것일까. 사실 이종범은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은퇴압박에 시달렸다. 첫 은퇴 언급은 두 번째 FA 자격을 따냈던 지난 2005시즌 후였다.
당시 KIA는 이종범과의 협상과정에서 ‘3년차 바이아웃’을 제시한 바 있다. ‘3년차 바이아웃(Buy out)’이란 2년 계약을 하되 이 기간 일정 옵션을 충족시킬 경우 3년째에도 선수생활을 보장하며, 은퇴 뒤 해외연수 2년을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이종범은 크게 반발, 총액을 줄인 뒤 바이아웃 조항을 삭제하고 2년 계약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종범의 기량은 전성기 시절로 돌아오지 못했다. 2006년 타율 0.242 1홈런 10도루에 그치더니 이듬해에는 급기야 1할대 타율(0.174)까지 떨어지며 은퇴 기로에 내몰렸다. 그래도 이종범은 현역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있었다. “본인이 체력적으로 뛸 수 없다고 하기 전에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야구는 환경 자체가 선수에게 나이를 의식하도록 만든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이종범은 지난 2009년, 4년 만에 규정타석에 진입하며 조용하지만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특히 최고참으로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이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로 등록된 이종범은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고 대타 또는 대수비 요원으로 출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선동열 감독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은퇴를 권유한 과정과 KIA 구단 측의 접근 방법도 살아 있는 전설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시기의 적절성에 대한 부분이다.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시즌 준비를 모두 마친 상황에서 나온 은퇴 권유라 이종범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개막전까지 어떻게든 안고 가려했던 선동열 감독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과거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 명의 전설, 선동열과 이종범의 관계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일단락됐다.
현재 이종범은 광주와 KIA에 등을 돌린 채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광주에 있던 집도 처분해 조만간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KIA를 떠난 것은 아니다. 이종범은 “최근 구단으로부터 은퇴에 대해 들은 것이 없다. 오히려 나의 결정에 최고 지도자 대우를 보장해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밝혔다.
향후 이종범의 거취와 이종범이라는 거물을 내려놓은 선동열의 KIA가 올 시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진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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