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볼넷만 536개' 창창했던 박현준 왜?
입력 2012.03.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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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볼넷, 조작 증거확보 어려움
진술 외엔 적발 가능성 희박 확신
끝까지 자신은 아니라던 박현준은 거짓된 미소로 야구팬들을 우롱했다.
지난 2일 대구지검에 소환된 LG 트윈스 투수 박현준(26)이 그동안 “난 아니다”라는 일관된 주장과 달리 혐의 대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해 8월 두 차례에 걸쳐 '1회 볼넷'을 내준 뒤 각각 300만원의 사례금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진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KBO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프로야구의 품위를 손상시킨 박현준에 대해 규약 제144조3항에 의거, ‘야구 활동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야구활동이 정지되면 일체의 구단 활동(훈련, 경기)에 참가할 수 없고 그 기간 참가활동보수도 받을 수 없다. 사실상 야구선수로서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2차 1순위로 SK에 입단한 박현준은 ‘야신’ 김성근 전감독이 애지중지 키우던 특급 유망주였다. 사이드암으로는 보기 드물게 150km의 강속구를 던져 ‘제2의 임창용’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2010년 LG로 트레이드 될 당시, 김성근 감독이 끝까지 박현준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우승과 맞바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만큼 박현준의 잠재력은 ‘야신’의 마음을 훔쳐갈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야신의 기대대로 박현준은 LG '뉴 에이스'로 성장했다. 지난해 29경기에 등판해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 데뷔 후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4300만원이던 연봉도 LG의 신연봉제 수혜를 크게 입으며 1억 3000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박현준이 그저 한 해 반짝인 투수가 아닌 롱런이 가능한 에이스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 연봉은 매년 오를테고, FA 자격을 얻게 될 경우 천문학적인 돈을 만질 수 있었다. 게다가 ‘개장수’라는 특이한 별명과 함께 스타성까지 갖춰 ‘전국구 인기팀’ LG의 아이콘이 될 재목이 박현준이었다.
박현준도 지난 시즌 후 억대 연봉을 받게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경기 조작으로 받은 액수는 경기당 300만원씩 고작 600만원에 불과하다. 600만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걸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박현준은 왜 경기조작에 가담한 것일까.
사실 브로커의 진술이 나오기 전까지 야구는 승부조작이 불가능한 종목으로 여겨졌다. 특성상 선수 한 명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실수 하나가 승부 자체를 뒤바꿀 만큼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치기 쉬운 공을 준다 해서 그것이 꼭 안타나 홈런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더욱이 쉽게 안타나 볼넷을 허용할 경우, 이를 가만히 두고 볼 감독은 없다. 가차 없이 교체되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의 ‘블랙삭스 스캔들’처럼 여러 선수들이 모의한다면 승부조작이 가능하겠지만 이 마저도 구름관중과 무수히 많은 중계 카메라 앞에서 금방 들통 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불법배팅 사이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의 승패와 스코어를 맞히는 스포츠 토토·프로토와 달리, 불법사이트는 승패뿐만 아니라 이닝당 득점, 실책, 안타 수 등 훨씬 기상천외하고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박현준과 김성현이 시도한 ‘첫 회 볼넷’은 조작이 가장 쉬운 항목이었다. 브로커들은 그런 빈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여러 선수가 아닌 단 한 명만 포섭해도 경기조작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는 3936개의 볼넷이 나왔다. 이 가운데 1회 볼넷은 전체의 약 14%인 536개나 됐다. 특히 선발투수들은 몸이 덜 풀린 1회, 제구에 난조를 겪는 일이 종종 있어 아무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따라서 박현준과 김성현도 절대 적발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구속된 브로커의 뜻밖의 진술이 아니었다면 이번 프로야구 경기조작 사태는 영영 함구에 의해 비밀로 붙여졌을 것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은 현재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전 구단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알렸다. 경기조작을 의심할만한 증거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조작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뚜렷한 단서가 나올 경우 추가수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관련자들 입에서 실명이 거론되지 않는 한 또 다른 가담자 적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KBO는 이번 경기조작 사건과 관련,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과 불법행위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일말의 의혹 없이 철저히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관련조사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며, 사건 관련자에 대해 엄중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이에 지난달 29일부터 일주일간 불법스포츠도박과 관련 선수들로부터 자진신고를 받았지만 접수된 건은 제로였다. 하지만 많은 야구팬들은 프로야구 경기 조작이 박현준, 김성현에게서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의혹의 시선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첫 회 볼넷을 내준 모든 투수들에게 쏠리고 있다.
앞으로 경기조작이라는 추악한 행태를 막으려면 KBO와 각 구단들의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 영구제명 등의 강력조치는 선수들이 다시는 꿈도 꾸지 못할 일벌백계가 될 수 있다. 모르쇠로 일관한 채 거짓된 미소로 야구팬을 우롱한 이들에게 자비심을 베풀어서는 곤란하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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