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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는 아리랑 고개, 연극 ‘스미레 미용실’ [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27 09:30
수정 2026.09.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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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신 연출이 빚어낸 1965년 재일 코리안의 삶

10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짙은 어둠이 깔린 1965년 일본 규슈의 탄광촌. 가난과 차별이라는 장벽 앞에서도 끈질기게 맥박치는 생명력이 있다.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크게 웃을 줄 아는 이들의 역설적인 삶을 조명한다. 비극 앞에서도 기어코 일상을 일궈내는 억척스러운 서사를 통해, 극은 절망을 덮는 단단한 연대와 희망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작품의 주된 배경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규슈의 ‘아리랑 고개’다. 이곳에서 낡고 허름한 이발소를 운영하는 수미의 가족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끈다.


ⓒ세종문화회관

수미의 유일한 꿈은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딴 ‘스미레 미용실’을 번듯하게 여는 것이다. 국적도, 살아가는 방식도, 각자가 품은 상처도 저마다 다른 이들은 좁은 이발소에 부대끼며 웃고 울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이들의 위태롭지만 평화롭던 일상은 탄광 폭발 사고라는 비극을 마주하며 산산조각이 난다. 극은 모든 것을 앗아간 재난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가는 수미의 모습을 비추며, 타국에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의 무게를 조명한다.


작품은 재일교포 2.5세인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신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야키니꾸 드래곤’의 10년 전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 성격의 극이다. 동시에 이른바 ‘재일 코리안 3부작’의 묵직한 마침표를 찍는 완결편이기도 하다. 정의신 연출은 자신의 뿌리인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문제의식을 이번 무대에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종문화회관

특히 극 중 주인공 수미는 실제 탄광 사고 이후 보상 운동을 벌이며, 남편이 떠난 뒤에도 차별에 맞서 끝까지 싸웠던 재일교포 여성들의 생생한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했다. 과거 일본에서 먼저 무대에 올랐던 이 작품은 이번 프로덕션을 통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나게 됐다.


연출과 극작 측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눈물 속의 웃음’을 끌어내는 정의신 특유의 정교한 완급 조절이다. 극의 분위기가 숨 막힐 듯 무거워지고 인물들이 바닥없는 절망에 빠지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실없는 농담과 억척스러운 유머가 끼어든다. 이는 역사적 아픔과 개인의 비극을 단순히 소모적인 눈물거리로 남기지 않으려는 연출가의 의도로 보인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인물들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스미레 미용실’은 1965년이라는 특정 시공간에 갇힌 재일 조선인의 역사적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재난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지속해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공연은 10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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