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기술 있어도 시장이 없다”…기업들, 정부에 인프라 촉구
입력 2026.09.21 17:31
수정 2026.09.21 17:31
21일 한국공학한림원 수소경제 대토론회
국내 수소기업, 기술개발·실증·시장 창출 애로 쏟아내
“정부 주도 대규모 공급망 구축해야”
“정책 불투명하면 투자 어려워…꾸준한 관심 필요”
(앞줄 왼쪽부터) 문일 연세대 교수,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김소희 국회의원, 이광재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장, 이종배 국회수소경제포럼 대표의원, 정태호 국회수소경제포럼 대표의원 등 참석자들이‘제2회 수소경제 대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한국수소연합
수소산업의 공급망을 떠받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정부에 시장과 인프라부터 만들어달라고 촉구했다. 기술을 개발해도 실증과 사업화로 이어갈 기반이 부족한 만큼 정부가 수소 공급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충하고, 기업이 장기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일관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공학한림원과 국회수소경제포럼은 21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2026 한국공학한림원 수소경제 대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행사에는 국회와 정부,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관계자 약 150명이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정책 논의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수소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전면에 나섰다. 수소산업의 공급망과 일자리를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은 기술개발부터 실증, 시장 창출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달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기업들은 수소산업이 초기 시장을 넘어서려면 민간 투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수소 생산과 저장·운송, 충전, 활용을 잇는 기반 시설을 정부가 먼저 구축해 수요와 공급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만규 일진하이솔루스 대표이사는 “수소산업 육성과 수요 창출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로 이용자 접근성이 높은 대규모 수소 공급 인프라를 먼저 마련하고 지속해서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정수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기부터 그린수소만 고집하기보다 그레이수소와 블루수소를 함께 활용해 시장을 형성한 뒤 점진적으로 청정수소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는 “초기에는 그레이·블루 수소를 포함해 유연하게 생산해야 한다”며 “태양광 유휴 전력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린수소 생산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도 기업이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을 주문했다. 신승규 현대차 RH PMO 본부장 부사장은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기술은 1~2년 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에 걸쳐 쌓아야 한다”며 “정책 자체가 불투명하면 기업으로서는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2019년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이후 실행 과정에서 부침이 있었다”며 “중국이 모빌리티와 수전해, 수소 발전 분야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만큼 국내 기업이 확보한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21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2026 한국공학한림원 수소경제 대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수소연합
토론에서는 수소산업의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과제도 논의됐다. 참석자들은 총론과 생산, 메가프로젝트, 저장·유통, 모빌리티·활용, 지방자치단체 등 6개 분과로 나뉘어 수소경제 전 주기의 현안을 점검했다.
생산 분과에서는 국내 생산과 해외 도입의 역할을 나누고 수소 생산세액공제를 확대해 국내 생산설비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모빌리티·활용 분과에서는 상용차와 지게차 등 수소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우선 육성하고, 충전소의 운영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수소 생산과 차량 보급, 충전 인프라가 서로 수요를 끌어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메가프로젝트 분과에서는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인 CHPS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이 다뤄졌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소 발전을 새로운 전력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수소도시와 실증사업을 추진할 현실적인 사업모델과 새로운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참고할 수 있는 수소 정책 방향이 2019년 수준에 머물러 있어 달라진 산업과 시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광재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기조강연에서 “인공지능 시대는 에너지 전쟁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류하는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수소는 단순히 하나의 연료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와 기술로 세계와 경쟁하고, 다음 세대에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택”이라며 “생산과 공급망, 발전, 저장·계통, 모빌리티와 지방자치단체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국회와 정부, 산업계, 연구기관, 학계 등에 흩어진 수소산업의 현안을 하나의 정책 과제로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공학한림원은 분과별로 도출한 내용을 정책제안서로 정리해 오는 10월 국회와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