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의 신작도 제작 못하는 나라
입력 2026.09.20 09:11
수정 2026.09.20 09:12
이창동 감독.ⓒAP/뉴시스
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가능한 사랑'이 제 83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이 부문을 수상한 건 최초다. 지난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14년 만의 베네치아 영화제 경쟁 부문 본상 수상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가 그동안 큰 관심을 받았지만 칸이나 베네치아 같은 세계적 영화제에서의 한국 영화 수상은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베네치아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 한국영화계로선 의미 있는 경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또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도 함께 받았다. 베네치아 영화제 출품작 가운데 비평적 관점에서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상인데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은 이 작품에 대해 “착취, 계급, 환멸, 사랑, 욕망, 그리고 이야기의 소유와 윤리를 탐구하는 미묘한 권력 게임들이 다층적이고 완벽한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가능한 사랑’은 현재 아카데미상 물망에도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영화는 공개되기 전부터 이미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화제작이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이어 ‘박하사탕’으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반열에 올랐다.
‘오아시스’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세계적 감독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밀양’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시’의 칸 영화제 각본상으로 이어졌다. 직전 작품인 ‘버닝’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격찬을 받았었다. 비록 수상은 불발됐지만 ‘버닝’은 세계 평단이 주목하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회자됐고 그에 따라 이 감독의 신작을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다. 이 감독의 신작이 나오기만 하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은 당연하고 수상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그런 관심 속에 등장한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칸 영화제가 아닌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됐다. 과거엔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해서 칸·베네치아·베를린 영화제가 대체로 비슷한 위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칸 영화제의 주목도가 올라간 측면이 있다. 칸 영화제가 쌍수 들어 환영하는 작품이라면 칸에 출품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사랑’이 칸에 가지 않은 건 칸 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출품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바로 이 작품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이기 때문이다. 칸은 OTT 콘텐츠를 강하게 견제하는데 반해 베네치아는 그렇지 않다.
'가능한 사랑' 스틸.ⓒ넷플릭스
‘가능한 사랑’이 OTT 영화가 된 이유는 그것 외엔 이 영화를 만들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제작지원금 15억원을 받았지만 그것 만으론 제작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총제작비를 60억~80억원 수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60억원 이상을 댈 수 있는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대기업을 포함해 한국의 그 누구도 투자에 나서지 못했다. 그 결과, 제작이 불가능해졌고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받은 15억원은 반납 처리됐다. 이 때 나선 것이 미국의 OTT 자본인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매우 적극적으로 투자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미국 OTT 작품이 되었다.
넷플릭스는 총 120억~130억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고 알려졌다. 원래의 예산을 뛰어넘은 이 투자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가 더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창동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감독으로서 독립성을 인정해줘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편하게 작업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창동 감독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계적 명성을 확보한 한국의 문화적 자산이다. 그가 내놓을 신작도 한국의 명예를 높여줄 것이 확실시됐다. 국제 영화제 수상 가능성도 당연히 매우 높아보였다. 그런 감독의 신작마저 우리 영화계가 제작하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을 안긴다.
이창동 같은 세계적 스타 작가마저 작품을 못 만든다면 어느 작가주의 예술영화 감독이 한국에서 작업할 수 있겠는가? 한국 영화계 투자 역량 전체가 미국의 일개 OTT 회사만도 못하다는 현실이 ‘가능한 사랑’을 통해 드러났다. 우리가 한류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국내 자본이 이 감독의 신작에 투자를 꺼린 이유는 수익성 압박 때문이다. 제 아무리 거장의 신작이고 외국에서 상을 받아와도 극장에서 돈을 벌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다. 요즘 극장시장이 위축된 결과 영화자본이 모두 움츠러들었다. 이대로라면 한국영화산업의 활력이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창동 감독도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정책 정도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 높은 영화가 계속 제작될 수 있도록 국가의 더 적극적인 지원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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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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