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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삼성 앞에선 못 깎았다?…D램 몸값 어디까지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9.20 07:00
수정 2026.09.20 07:00
G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

애플, 삼성전자 메모리 가격 인상안 그대로 수용했다는 외신 보도

2분기 글로벌 D램 매출 60% 급증…출하량 제자리, 값이 끌어올려

HBM·서버 D램 동시 품귀…신규 공장 가동까지 3년 반

장기계약 확산…삼성은 5년 롤링 계약, 메모리 확보 경쟁 치열

램·HBM·eSSD 가격 상승세를 나타낸 반도체 시장 인포그래픽. ⓒSK하이닉스 홈페이지 캡쳐

애플은 부품 회사들 앞에서 대부분 갑이었습니다. 한 해에 스마트폰만 2억대 넘게 만드니, 애플에 한번 납품하면 매출이 확 뛰는 구조거든요. 애플이 "이 가격 아니면 안 산다"고 하면 어지간해선 맞춰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메모리 반도체 앞에서는 그 공식이 안 통하는 모양입니다.


애플도 방법을 찾긴 했습니다. 앞서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를 찾아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싸게 달라"고 요청했거든요. 그런데 돌아온 답이 오히려 비슷하거나 더 비싼 가격을 제시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공급처를 넓혀봤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던 셈입니다.


기존 공급처에서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중국 매체 제몐신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애플에 제시한 내년 1분기 메모리 공급가는 올해 3분기보다 30~40%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애플은 이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플만 겪는 일은 아닙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 세계 D램 매출은 1547억3000만 달러(약 208조원)로 직전 분기보다 60%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 기간 출하량 자체는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값이 올라서 매출이 뛰었다는 뜻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실적발표에서 자사 D램 가격이 한 분기 만에 30~40%대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가격 협상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플도 D램 앞에서는 한발 물러선 모습입니다. 대체 D램 가격은 왜 이렇게까지 오른 걸까요.


고급 D램이 동나자, 평범한 D램까지 동났다


D램 가격이 왜 오르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이 메모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오래 담아두는 낸드플래시가 '창고'라면, D램은 지금 당장 쓸 자료를 펼쳐놓는 '책상'입니다. 처리할 일이 많아질수록 더 넓은 책상이 필요하죠. 노트북에도, 스마트폰에도, 챗GPT가 돌아가는 서버에도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최근 이 '책상'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이 AI 서버입니다. 생성형 AI가 검색이나 대화 수준을 넘어 추론과 에이전틱 AI로 확장되면서 이를 처리할 데이터센터와 서버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서버 한 대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해지는 만큼 AI 서버가 늘어날수록 서버용 D램 수요도 함께 커지는 구조입니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메모리 수요가 AI 인프라 투자와 에이전틱 AI 확산에 따라 서버를 중심으로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AI 수요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7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AI 관련 행사에서 내년 엔비디아의 칩 판매량이 올해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각국에서 AI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삼성전자의 HBM4E 제품. ⓒ삼성전자

AI 서버의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까지 동시에 폭증했습니다. HBM은 일반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가 오가는 통로를 넓힌 고성능 메모리입니다. AI 가속기가 처리할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AI 투자가 커질수록 HBM도 더 많이 필요합니다.


AI 서버가 늘면서 서버용 D램 수요가 커졌고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 수요도 함께 급증했습니다. 여기에 HBM은 일반 D램보다 웨이퍼 투입량이 많은 데다 생산 과정도 복잡해 생산능력을 많이 차지합니다. 메모리 업체들이 HBM 생산을 확대할수록 같은 생산능력 안에서 범용 D램에 돌아갈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일반 서버 수요까지 늘면서 PC·모바일용 D램까지 공급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공장을 더 지으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반도체 공장은 착공한다고 이듬해부터 물건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신규 팹을 짓고 실제 웨이퍼를 생산하기까지 3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공급 부족으로 채우지 못한 수요가 내년으로 넘어가는 데다 증설 효과도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려워 2027년에는 공급 부족이 올해보다 심해지고 2028년에도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값 깎을 때가 아니다, 물량부터 잡아야


거래 방식 자체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공급 부족이 길어지면서 고객사들은 가격을 조금 낮추는 것보다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 업체들도 이런 수요에 맞춰 장기 공급계약을 늘리고 있습니다.


예전 메모리 계약은 단기계약이나 분기 단위 협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그때그때 시황을 보고 다시 가격을 협상할 여지가 컸던 셈입니다. 최근에는 계약 기간 자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3년 이상이면 반도체 업계에서도 상당히 긴 장기계약으로 봅니다.


삼성전자도 최근 주요 고객사와 다년 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5년을 기본으로 하되 매년 1년씩 연장하는 '롤링' 방식의 계약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 협의 중인 계약까지 마무리되면 전체 생산능력의 60~70%를 장기계약 물량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SK하이닉스의 서버 D램 제품들.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역시 주요 고객사와 장기 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약 10개 주요 고객사와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며 추가 고객사와도 다년 계약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을 감수하더라도 필요한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메모리 업체는 향후 수요를 미리 확보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시장에서 '얼마에 살 것인가'만큼이나 '얼마를 확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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