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한강, ‘둥지’ 떠나는 창작자들 [자본에 밀린 문화공간①]
입력 2026.09.04 08:54
수정 2026.09.04 08:55
홍대·문래동→대학로 등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나는 창작자들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의 서점 폐업이 던진 질문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부동산 시장의 논리는 이기지는 못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골목의 문화 거점으로 거듭났던 한강 작가의 독립서점 ‘책방오늘’이 문을 닫은 것이다. 2018년 양천구 신정동에서 시작해 2021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골목의 지상 2층 단독주택 건물로 이전해 운영됐던 책방오늘은 2024년 7월 건물주가 법인에 건물을 매각하면서 운영을 종료해야 했다. 새 매수인이 전면 리모델링 및 재임대를 추진하면서 서점이 퇴거 통보를 피하지 못했다.
서촌이 이른바 ‘뜨는 동네’로 주목받으며 임대료가 상승하기 시작한 여파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촌 지역의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2024년 3분기 1㎡당 4만 3600원에서 2026년 1분기 4만 4600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중대형 상가 평균 임대료 역시 1㎡당 5만 2100원에서 5만 4200원으로 오르는 등 서촌 일대 상가 임대료는 최근 2년 동안 상향세를 보였다.
문 닫은 한강 작가의 서점ⓒ장수정 기자
한 부동산 블로그에서는 책방오늘이 입점한 건물을 소개하며 “서촌은 소액투자자들의 마지막 선택지”라며 “리테일 브랜드가 입점하기에 좋은 하드웨어 조건”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결국 35억원에 기업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강남 투자 전문 부동산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계에서 “한국의 부동산이 한강 작가를 이겼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문화공간이 밀려나는 현상은 서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3년간 총 359개의 작품을 기획하며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선도했던 학전은 2024년 폐관했다. 창립자인 고(故) 김민기 대표의 투병도 원인 중 하나였으나, 폐관 직전까지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었다. 그 배경에는 대학로의 상업화에 따른 임대료 상승이라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로는 2004년 인사동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문화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문화 생태계를 지키고, 보호하자는 취지로,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도 주어졌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대학로에 외부 자본이 유입되며 땅값이 치솟으면서, 높은 임대료를 이기지 못한 예술인들이 대학로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화장품 매장 등 상업 시설이 채우면서 소극장의 메카였던 대학로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2004년 문화지구 지정 이후 대학로 땅값은 매년 10% 이상 상승했고, 그 결과 소극장 임대료는 10년 만에 126%가 증가했다. 현재 대학로 소극장 임대료는 위치와 크기에 따라 1000만원이 넘는 곳들도 있다.
저렴한 임대료를 찾는 예술인들이 모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형성한 문래동 창작촌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를 피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초반 예술가들이 문래동에 모여 독창적인 벽화, 그래피티 등을 선보이며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했던 이곳 역시 상권이 과열되며 임대료 폭탄을 맞았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100만원대를 형성했던 임대료는 현재 목 좋은 자리를 지키려면 500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서울 홍대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던 인디 뮤지션들 역시 홍대 앞 임대료가 폭등하며 상수동, 망원동, 연남동 등으로 흩어지는 등 창작자 또는 예술인이 쌓아 올린 장소의 매력을 자본이 흡수하고, 정작 창작자는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서울 전역에서 반복되는 고질병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면 시장 논리에 따라 퇴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예술 분야에만 특혜성 잣대를 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문화 공간을 단순한 상업 점포와 동일선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한 골목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운영자는 “책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함께 모여 읽으며 사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이 주는 활기는 여느 식당과는 또 다른 것 같다. 우리 동네에, 골목에 이런 곳이 한 곳쯤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즉, 문화 공간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창작가가 어렵게 높인 장소의 가치가 결국 건물 소유주가 독식하는 형태가 반복되는 것에 씁쓸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서점마저 지켜내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꽃 필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