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화려한 일자리 정책…‘4개월’ 계약직 여전 [기자수첩-정책경제]
입력 2026.08.31 07:00
수정 2026.08.31 07:00
재경부 ‘청년플레이그라운드’ 추진
“교육·취업·경력관리까지 책임지겠다”
현실은 1년 미만 땜질 채용 여전
사람 ‘갈아 끼우는’ 일자리부터 근절해야
ⓒ클립아트코리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기획부 장관이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놨다. 이름이 화려하다. ‘청년플레이그라운드’. 교육·훈련부터 취·창업, 경력관리, 성장·도약까지 청년의 일자리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한다.
취지는 공감한다. 정부는 청년들이 취업하려면 경력이 필요하고, 경력을 쌓으려면 취업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산업 전환과 경력직을 선호하는 고용 관행으로 첫 일자리 진입 장벽도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교육·훈련과 일자리·창업 기회를 연결하고, 훈련과 경험, 재직 경력을 ‘커리어뱅크’에서 관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이름의 정책에 앞서 현재 공공부문에서 청년 일자리 실태 돌아봤으면 싶다. 경력 단절 여성 등을 위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좋은 경력을 쌓을 만큼 기회를 주는지 따져봐야 한다.
만 38세 여성 A 씨가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의 중견 물류기업에 입사했다. 만 서른이 되던 해에 그는 결혼했다. 2년 뒤 예쁜 딸을 낳았다. 이후 2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을 끝낸 그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사실에 가깝다. 회사에는 이미 대체 인력이 일하고 있었다. A 씨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그는 복직하자마자 퇴사했다.
서른넷이 된 A 씨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던 도중 둘째를 가졌다. 취업은 미뤘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흘렀다.
서른일곱이 된 A 씨는 정규직 일자리를 포기했다. 대기업은 문턱이 너무 높고, 중소기업은 육아를 병행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눈을 공공기관 비정규직으로 돌렸다.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과 큰 차별 없이 일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채용 기간이었다. 지역에 몇 안 되는 공공기관 모두 채용 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길어야 11개월, 짧으면 4개월도 있었다. 임금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A 씨는 취업을 포기하고 집 근처에 작은 카페를 열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과 경쟁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몸으로 깨닫고 있다.
31일 현재 정부 '나라 일터'에 올라온 A 여자중학교 계약제교원 채용 공고문 일부. ⓒ나라 일터
‘땜빵’ 일자리, 취업-실업-경제적 압박 악순환 반복
공공기관 계약직 단기 채용 문제는 지방 공기업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중앙부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1년도 안 되는 기간으로 채용한다.
공공기관 단기 계약직 대부분은 대체 인력 채용이다. 정규직 빈자리를 잠시 메우는 역할이다. 때론 대체 인력이 아님에도 1년 미만으로 사람을 뽑기도 한다. 같은 자리인데도 기존에 일해온 사람과 계약을 끝내고 새로운 사람을 채용한다. 경비 절감 차원인지, 채용 인력 숫자 늘리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땜빵’으로 채용된 계약직은 사실상 ‘경력’을 쌓기 어렵다. 최소 수년간 같은 분야에서 일을 익혀야 ‘경력’이 되는 데,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청년들이 업무를 익히고, 경험을 쌓고, 조직에 적응할 즈음이면 계약은 끝난다.
최근 울산항만공사는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고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비정규직 근로 및 임금조건 개선’ 계획을 내놨다.
핵심은 1년 미만 근로계약과 초단시간 근로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다.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경우에는 사전심사제 의결 요건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1년 미만 근무 후 퇴직하는 근로자에게는 공정 수당도 지급한다. 유사 근로자와 동일한 임금 지급 기준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실제 임금수준은 최저임금 대비 최소 118% 이상 지급한다.
울산항만공사의 이러한 결정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기·불안정 고용 자체를 최소화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공공기관으로서 노동의 가치, 노동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울산항만공사의 노력은 ‘값싼’ 비정규직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향하지 않는다.
구 부총리가 내놓은 ‘청년플레이그라운드’ 정책이 현실에 어떻게 구현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청년에게 수 개월짜리 ‘무늬만 경력’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 민간에서 탐낼 만큼의 경력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몇 개월 뒤 사라지는 일자리나, 수개월 만에 사람을 갈아 끼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 일자리 현실은 ‘한 번 계약직은 영원한 계약직’이 굳어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라장터’에는 3~4개월짜리 초단기 채용 공고가 넘쳐난다.
이런 일자리를 선택하는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한다. 매번 새로운 일자리 찾기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항상 실업과 취업에 대한 불안, 경제적 압박과 싸워야 한다.
결국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청년플레이그라운드’와 같은 화려한 ‘네이밍’이 아니라 고용 절벽의 끝에 선 노동자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