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없던 고령 운전자도 '고위험'…사전 선별 가능성 확인
분당서울대병원, 실제 교통사고 기록 2년 추적
교육 기간·인지기능검사 결과로 고위험군 선별
“정밀 운전능력 평가 연계에 활용 기대”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한지원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이력이 없는 고령 운전자도 간단한 인지기능검사를 통해 향후 사고 위험을 가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거 사고 이력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고위험 운전자를 사전에 가려내 정밀한 운전능력 평가로 연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4년 4만2369건으로 증가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다른 연령대보다 치사율이 높아, 사고 위험이 큰 운전자를 선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만 그 방법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인지기능검사를 활용해 사고 위험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연구마다 결과와 해석이 엇갈렸다. 안전운전에는 인지기능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자신의 운전 능력을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김기웅·한지원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한국 인지노화·치매 코호트 연구(KLOSCAD)에 참여한 60세 이상 남성 운전자 1673명의 운전위험설문 결과와 이후 2년간의 경찰청 교통사고 기록을 비교·분석했다.
‘기호잇기검사’와 같은 원리의 유사 검사지. ⓒ분당서울대병원
설문에서는 최근 3년간 교통법규 위반 횟수와 사고 횟수, 본인 과실 사고 횟수를 확인했다. 운전자뿐 아니라 배우자·자녀 등 가족에게도 같은 내용을 물어 응답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2년의 추적 기간 동안 1673명 가운데 290명(17.3%)이 인적 피해가 발생한 본인 과실 교통사고를 냈다. 설문에서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경험이 많다고 답한 운전자일수록 향후 사고 위험도 높아져 점수가 1점 증가할 때마다 사고 위험이 1.28배 증가했다.
특히 사고를 낸 290명 가운데 111명(38.3%)은 설문 당시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경험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기존 설문만으로 위험을 포착하기 어려운 이들을 ‘침묵의 위험군’으로 분류했다. 가족 역시 대부분 이들의 위반이나 사고 경험을 인지하지 못해 가족의 응답만으로는 위험을 사전에 가려내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위반·사고 경험이 없다고 답한 운전자 876명을 대상으로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교육 기간이 짧고 ‘기호잇기검사’ 수행 시간이 길수록 향후 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호잇기검사는 숫자와 글자를 번갈아 연결하면서 주의를 전환하고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인지기능검사다.
교육 기간이 9년 이하(중학교 졸업 이하)이면서 기호잇기검사 수행 시간이 180초 이상인 운전자의 사고율은 20.9%로, 두 조건 모두 해당하지 않는 운전자(9.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차이는 나이 등 다른 요인을 보정한 뒤에도 유지됐다.
연구팀은 짧은 교육 기간은 자신의 기능 변화를 스스로 감지하고 판단하는 여력과 관련된 지표이며, 기호잇기검사 수행시간 증가는 복잡한 운전 상황을 처리하는 속도와 실행기능 저하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기준은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밀한 운전능력 평가가 필요한 고위험군을 우선 선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 기간 역시 학력 수준 자체가 아닌 자신의 기능 변화를 감지하는 여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됐다고 덧붙였다.
교신저자인 김기웅 교수는 “사고를 낸 운전자 가운데 상당수는 본인도 가족도 위험을 알아채지 못한 침묵의 위험군이었다”며 “교통법규 위반이나 사고 이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이런 위험군을 가려낼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제1저자인 한지원 교수는 “교육 기간과 기호잇기검사라는 2분 안팎으로 걸리는 간단한 확인만으로 진료실과 면허 갱신 현장에서 고위험군을 먼저 가려내면, 정밀한 운전 평가로 연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향후 여성 운전자와 다양한 운전 환경으로 연구를 확대해 고령 운전자 사고 예방에 활용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