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지, 동전주에 관리종목까지…"위기 탈출 카드 총동원"
입력 2026.08.20 07:30
수정 2026.08.20 07:30
상장 3사 잇따라 관리종목…상장 유지 부담 커져
로봇·블록체인 신사업까지…기업가치 제고 안간힘
최병오, '셀프 추대' 논란에도 섬산련 연임 추진
"대외 영향력 유지 위한 것" 분석…형지 "경영과 별개"
최병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패션그룹형지가 상장 계열사들의 잇따른 관리종목 지정과 주가 부진, 그룹의 재무 부담까지 겹치면서 위기 돌파를 위한 전방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섬유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 회장 연임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어, 업계 내 네트워크와 대외 영향력을 활용해 그룹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섬산련은 차기 회장 선출을 둘러싼 내홍을 겪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회장 추대위원회 구성 과정이었다. 섬산련은 지난 6월 이사회를 열어 5명으로 구성된 추대위를 꾸렸다. 이후 추대위는 세 차례 회의를 거쳐 최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연임 의사를 밝힌 최 회장이 추대위원 전원을 직접 선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셀프 추대' 논란이 불거졌다.
전임 회장들을 비롯한 일각에서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섬산련은 지난 7일 임시총회에서 기존 추대위 결정을 백지화하고 추대위를 새롭게 구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연임 여부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새 추대위가 최 회장을 다시 후보로 추천할 가능성이 있지만, 새로운 후보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만큼 향후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섬산련 관계자는 "향후 추대위를 다시 구성해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라면서도 "아직 이사회가 언제 진행될지 등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섬산련 회장은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는 명예직이다. 그럼에도 국내 섬유·패션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산업계에 갖는 상징성과 대외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최 회장의 연임 행보가 주목받는 것은 현재 형지그룹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협회장이라는 직함이 기업의 실적이나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 대표로서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대외 신인도 측면에서 무형의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 계열사들의 상장 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그룹의 재무 부담까지 겹친 시기인 만큼, 최 회장 입장에서도 섬산련 회장이라는 상징성 있는 자리를 쉽게 내려놓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형지그룹의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그룹 내 상장사인 형지엘리트와 형지글로벌, 형지I&C 등 3곳이 이달 잇따라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최 회장의 아들인 최준호 부회장이 이끄는 형지엘리트와 형지글로벌은 주가 및 시가총액 미달 등의 사유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최 회장의 딸 최혜원 대표가 이끄는 형지I&C 역시 시가총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관리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주가도 부진하다. 형지엘리트와 형지글로벌은 최근 주가가 300원대까지 내려가는 등 이른바 '동전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형지I&C 역시 주가와 시가총액이 크게 떨어지며 상장 유지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그룹 차원의 재무 부담도 상당하다. 패션그룹형지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700%를 웃돌았다.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차입금과 이자 부담이 큰 상황이 이어지면서 재무구조 개선 필요성이 커졌다.
패션그룹형지의 자산 리밸런싱 주요 대상인 인천 형지글로벌패션복합센터. ⓒ패션그룹형지
이에 형지는 주가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형지엘리트는 오는 10월 5대1 주식병합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주식병합은 여러 주식을 한 주로 합쳐 주당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회사의 본질적인 기업가치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저가주 이미지를 벗어나고 주가 미달에 따른 상장폐지 위험에 대응하는 효과가 있다.
또 인천 송도 본사 사옥과 부산 복합쇼핑몰 아트몰링 등의 매각을 추진하며 이른바 '자산 리밸런싱'에 나섰다.
회사 측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인 자산 재편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이 우선 차입금과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에도 나섰다.
형지엘리트는 지난해 웨어러블 로봇 사업을 위한 자회사 형지로보틱스를 설립한 데 이어 중국 로봇 기업과 손잡고 국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패션그룹형지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결제 사업에도 발을 넓히고 있다.
형지글로벌은 블록체인 전문기업 이큐비알과 손잡고 차세대 결제 시스템 '형지페이'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포인트 채널과 형지멤버스 통합 멤버십, 디지털 지갑, 전자결제대행 시스템을 연동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생태계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형지는 현재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부터 주식병합을 통한 저가주 탈출, 신사업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까지 그룹 안팎에서 위기 탈출을 위한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최 회장의 섬산련 회장 연임 추진까지 더해지면서, 그룹 안팎에서 가용할 수 있는 카드를 모두 꺼내 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형지는 현재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본 사업이 잘되지 않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며 "최 회장 입장에서는 연임을 통해 일종의 '방패'나 '병풍막'을 치고 대외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형지 측은 최 회장의 섬산련 회장 연임 추진과 그룹의 경영상황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형지 관계자는 "그룹의 경영 활동과 협회 회장직 수행은 상호 독립된 별도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