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라더니 대형마트만 양보?…새벽배송 규제 완화 딜레마
입력 2026.08.20 07:00
수정 2026.08.20 07:00
중기부, 소상공인단체 ‘7개 상생안’ 대형유통업계에 전달
1만원 미만’ 소량판매 제한에 10년간 상생기금 요구 등
업계 “규제 풀면서 또 다른 부담…소비자 편익도 저해”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연합뉴스
정치권이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소상공인단체가 각종 상생 조건을 요구하면서 정책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따라붙고 있다. 맞벌이·1인가구 증가에 따른 소비 편의 제고를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이들의 소비 패턴과 배치되면서다.
유통업계는 상생을 명분으로 한 요구안이 또 다른 제한으로 이어질 경우 규제 완화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기존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새로운 과제를 요구하는 것은 ‘규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규제를 받아들이라’는 격이라는 비판인 것이다.
20일 김성원(국민의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이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상공인단체가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요구한 상생안은 ▲상생기금 조성 ▲농·축·수산물 소량판매 제한 ▲SSM 출점 제한 ▲온누리상품권 확대 ▲전통시장 상인의 날 지정 ▲소상공인 도매가 구매 지원 ▲공동 PB상품 개발 등 7가지로 요약된다.
이는 중기부가 연초부터 전국상인연합회와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 소상공인단체와 소통하며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대한 중소유통업계의 우려와 상생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다. 중기부는 이를 대형 유통업계에 전달했으며, 업계는 수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대형마트에 적용돼 온 영업규제가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로 제한된 영업시간 ▲심야 시간‧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이 금지 등을 적용받고 있다. 전부 마트의 영업 방식과 시간을 직접 제한하는 규제다.
그러나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 환경이 재편되자 대형마트에만 적용되는 규제가 이커머스와의 형평성에 어긋나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영업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당정은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을 위한 법 개정에 합의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며 규제 완화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김성원 산자중기위원장 역시 대형마트 규제 완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 상생안이 또 다른 족쇄로…대형마트, 소량판매 제한 ‘난색’
대형마트 업계는 이번 상생안을 놓고 대형유통과 중소유통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새벽배송 허용에 따른 중소유통업계의 우려를 고려해 일정 수준의 상생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일부 상생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농·축·수산물 소량판매 제한이다. 소상공인단체는 영업제한 시간에 농·축·수산물의 단일품목 소량판매를 제한할 것을 요구했으며, ‘1만원 이하’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양파 4000원과 계란 7000원을 함께 구매해 결제금액이 1만원을 넘어도 단일 상품 가격이 1만원 미만이면 구매할 수 없는 식이다. 전체 주문금액이 아닌 개별 상품 가격을 기준으로 판매를 제한하는 구조여서 여러 품목을 소량씩 구매하는 소비자일수록 제약이 커진다.
때문에 업계는 규제 완화 논의에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과의 규제 격차를 좁히기 위해 새벽배송 허용을 추진하면서 또 다른 영업 제한을 전제로 한다면 결국 ‘반쪽짜리 완화’에 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관계자로서 제일 중요한 건 소비자 편익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일 품목으로 제한을 두면 당장 고객에게 불편을 끼치게 된다”며 “상공인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굳이 소비자 편익을 해치면서까지 상생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1인가구 증가와도 엇박자를 낸다. 가구원 수 감소로 대용량보다 소량·소포장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 신선식품을 사실상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도록 제한하면 이용 문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특히 이미 새벽배송 시장을 선점한 이커머스와의 경쟁 여건을 고려하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쿠팡은 월 7890원의 와우 멤버십 회원에게 로켓배송 상품을 최소 주문금액 없이 무료로 배송하고 있으며, 신선식품도 1만5000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 새벽배송을 제공한다.
이 관계자는 “1만원 이하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면 오히려 온라인에서 1만원 이하였던 상품들의 가격이 1만원 이상으로 올라가는 등 물가 상승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1만원 이상의 묶음·대용량 상품 중심으로 판매가 재편돼 소비자의 실제 지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또 “다만 정부가 현행 규제에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하고 소상공인 의견을 수렴하는 등 규제 완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며 “규제 완화 의지가 없다면 이런 움직임 자체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 매대에서 소비자들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뉴시스
다른 상생안 역시 실효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가 크다. 겉으로는 ‘상생’을 내세웠지만 상당수 요구안이 대형유통과 중소유통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기보다 대형마트의 희생을 전제로 중소유통업계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치우쳤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도매가 구매 지원이다. 대형마트·SSM이 자체 구매력과 협상력을 바탕으로 확보한 상품을 소상공인에게 도매가로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업계에서는 대형마트에 중소유통업계의 물류·조달 역할까지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뒤따른다.
여기에 상생기금 조성도 업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소상공인단체는 온·오프라인 대형유통사가 온라인 매출의 일정 비율을 출연해 최소 10년간 매년 100억원 이상의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새벽배송 허용에 따른 사업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간 기금 출연까지 요구할 경우 규제 완화에 따른 실익이 떨어질 수 있다. 기존 규제를 걷어내는 대가로 새로운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규제 푸는 비용을 치르라는 것이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대형마트 바이어들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을 수 밖에 없다”며 “바이어들이 산지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공급가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인데, 그것까지 소상공인과 공유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역시 현재 상당히 취약한 상황인데 이런 식의 요구까지 받아들이면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라고 본다”며 “소상공인과의 상생 필요성을 고려하더라도 7개 요구안을 모두 수용하기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두 가지를 중심으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일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