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낳은 극좌…극단이 극단을 키웠다 [기자수첩-국제]
입력 2026.08.19 07:00
수정 2026.08.19 07:14
MAGA가 키운 사회주의…트럼프의 역설적 유산
'사회주의 금기' 깨버린 미국…DSA, 민주당 중심으로
지난 6월 28일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이 뉴욕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2010년대만 해도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공개적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 냉전이 끝난 지 오래였지만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주류 정치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랬던 미국이 불과 10여년 만에 달라졌다.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은 이제 무시하기 어려운 정치세력이 됐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가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최근에는 조란 맘다니까지 뉴욕 정치의 중심에 섰고, DSA 소속 정치인들이 예비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언제부터 사회주의에 이렇게 관대해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변화를 앞당긴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2016년 대선을 돌이켜보면 징후는 이미 있었다. 당시 미국 정치에서 가장 뜨거웠던 두 정치인은 트럼프와 샌더스였다. 극우 포퓰리스트와 민주사회주의자. 정치적 좌표로만 보면 정반대였지만 두 사람의 지지층이 품은 불만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세계화의 혜택을 독점한 엘리트, 월스트리트, 워싱턴의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이었다. 트럼프는 이 분노에 '미국 우선주의'라는 답을 내놨고 샌더스는 불평등 해소와 복지 확대를 제시했다. 같은 병을 진단하고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놓은 셈이다.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이후 미국 정치는 빠르게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불법 이민자 추방과 국경 봉쇄, 보호무역, 동맹을 향한 압박처럼 과거 공화당 주류에서도 부담스러워했던 정책들이 당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트럼프를 경계했던 공화당 정치인들도 하나둘 그의 노선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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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공화당의 오른쪽 경계를 허물자 민주당에서도 반대 방향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기존 민주당의 온건한 방식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국민 의료보험, 대학 등록금 면제, 부유층 증세, 대규모 공공주택처럼 과거 미국 정치에서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정책들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었다.
그 틈을 DSA가 파고들었다. 이들은 민주당 밖에서 제3당을 만드는 대신 민주당 경선에 후보를 내는 방식을 택했다. AOC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등장했고 이제는 미국 최대 도시 뉴욕에서도 DSA 정치인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성장 방식이 트럼프와 닮았다는 점이다. 트럼프 역시 새로운 정당을 만들지 않았다. 공화당 안으로 들어가 경선을 통해 기존 정치인들을 밀어냈고 결국 당 자체를 자신의 색깔로 바꿨다. DSA가 민주당에서 시도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DSA가 민주당을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주류는 여전히 중도·자유주의 세력이고 DSA는 당내에서도 논쟁적인 존재다. 그러나 10여년 전만 해도 미국 정치의 변방에 머물던 '민주사회주의'가 이제 민주당의 노선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세력이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에 남긴 것은 MAGA만이 아니다. 그가 기존 공화당의 문법을 깨고 오른쪽으로 움직인 만큼 반대편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반작용이 일어났다. 트럼프가 강해질수록 그를 가장 강하게 부정하는 세력도 함께 강해졌다. 미국에서 한때 금기어에 가까웠던 '사회주의'가 다시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온 이유다.
어쩌면 트럼프 시대가 낳은 가장 큰 정치적 유산은 미국 사회주의의 부활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