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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 배우’ 최재림 “무뎌졌던 연기 인정…날 바짝 세우는 중” [인터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8.02 12:14
수정 2026.08.02 12:14

‘유미의 세포들’서 자존감 의인화한 ‘견습세포 109’ 역

“공연 보면서 ‘혼자가 아니야’ 위로 받길”

“일을 많이 하면서 감정을 다루는 연기도 조금씩 기계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기술적으로도 날카로움이 둔해지는 걸 느꼈죠. 확실하게 무뎌져 있었습니다. 눈으로는 보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올 초에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나를 다시 갈아야겠더군요. 2월 말부터 보컬 레슨을 다시 받으면서 날을 바짝 세우는 중입니다.”


ⓒ샘컴퍼니

최근 몇 년간 뮤지컬 무대와 방송 매체를 오가며 해마다 수많은 작품을 소화해 온 배우 최재림의 말이다. 올초 가졌던 휴식 기간은 그에게 단순한 쉬어가기를 넘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는 전환점이 됐다. 특히 그는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뒤로하고 혼자 차를 끌고 떠났던 여행에서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혼자 차를 끌고 무작정 도시만 정해놓고 8일 동안 여행을 떠났죠. 정처 없이 다니며 산과 강, 갈대밭 같은 자연을 보는데, 마치 온탕에 들어간 것처럼 어깨의 긴장이 싹 풀리고 열이 쭉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쉰다는 게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하고 늦잠을 자는 게 아니라, 다가올 내일에 대한 불안과 잡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의 나’를 온전히 바라볼 줄 아는 것이라는 걸 엿본 시간이었습니다.”


최재림의 ‘쉼’을 끝낸 건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제작진의 급작스러운 합류 요청이었다. 최재림은 당초 계획했던 장기 휴식을 접어두고, 주저 없이 무대로 복귀했다.


“대본을 읽고 음악을 들어보면서 이 작품이 가진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주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좋은 시스템 안에서 많은 경험을 쌓아왔는데, 그 경험을 창작 작업 과정에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면 이 업계에서 그동안 저에게 보내준 존중과 인정을 조금이라도 돌려주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주인공 유미의 일상과 연애,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 세포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유미와 구웅의 연애 서사를 축으로 이성, 두려움, 출출이, 응큼이 등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의인화한 세포들이 무대 위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세포 마을에서 최재림이 연기하는 ‘견습세포 109’는 원작 웹툰에는 없는 뮤지컬 오리지널 캐릭터다. 유미의 생일인 10월 9일에서 이름을 따온 109 세포는 유미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자존감’을 대변한다.


“‘자존감’이 의인화된 세포라고 해서 등장하자마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완벽한 인물로 나오면 극적 재미가 떨어지잖아요. 뮤지컬은 갈등과 해결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중요한데, 109 역시 철부지 견습 세포로 시작해 의욕만 앞서다 유미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시행착오를 겪도록 잡았습니다. 1막 엔딩에서 그 아픔을 거치며 ‘내가 유미라는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이름을 찾고 싶었구나’라는 명확한 목적을 깨닫게 되죠. 2막에서 진정한 자존감으로 거듭나는 109의 성장은 유미가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과 그대로 맞물려 있습니다.”


ⓒ샘컴퍼니

폭발적인 성량과 명확한 딕션으로 세포 마을을 누비는 109 세포에는 최재림 본인의 실제 성격도 직관적으로 반영됐다. 유미의 현실 서사와 세포들의 소동극이라는 두 개의 큰 줄기 속에서 관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그는 무대 위에서 확실한 에너지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무대 위 109의 모습은 제 실제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감과 약간의 고집이 섞여 있는 모습이죠. 연기를 할 때 조금 더 평이한 톤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니까 서사가 희미해지더라고요. 유미의 이야기와 세포들의 이야기 사이에서 관객들이 길을 잃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명확한 에너지와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극의 중심을 끌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34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함께 만든 이번 공연은 연극적 방식으로 연습이 진행됐다. 연출진이 큰 콘셉트를 던지면 배우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장면을 구축하는 구조였다. 수십 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현장에서 최재림은 수용과 정리를 맡은 리더 역할을 자처했다.


“양정웅 연출 스타일은 배우들에게 모든 것을 정해줘서 옭아매기보다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밑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34명의 배우가 각자 아이디어를 내면 그림이 34개가 되어버립니다. 결에 맞게 의견을 취합하고 정리해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제가 맡았습니다. 부딪히며 연출팀과 토론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배우들 간의 전우애와 사기는 훨씬 끈끈해졌습니다.”


최재림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고 연기하면서 자존감이라는 개념과 무대가 가진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가 정의하는 자존감 역시 맹목적인 자신감이 아닌, 객관적인 현실 인식에 뿌리를 둔다.


“현실을 보지 않고 자신만 믿는 것은 망상이죠. 내 부족함을 직시하고 채워나가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진짜 자존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나 혼자구나,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지만,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내 안에서 나만을 위해 치열하게 응원하는 수많은 세포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의 우주’라는 가사처럼,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니고 이미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는 위로를 안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8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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