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문석 "'호프' 통해 집요함 배워, 더 치열하게 연기할 것" [인터뷰]
입력 2026.08.02 14:00
수정 2026.08.02 14:00
스크린 주연작 촬영 마쳐
"좋은 의미에서 얼굴 자체가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았다. 연기적인 표현일 텐데, 구강과 하관의 움직임이 너무 기묘하고 놀라웠다."
'호프' GV에서 봉준호 감독이 배우 음문석을 향해 건넨 찬사다. 음문석은 '호프'에서 호포리의 목수 양배 역을 맡아 선과 악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기묘한 존재감을 완성했다.
음문석ⓒ고스트 스튜디오
'호프'는 비무장지대 인근 가상의 마을 호포항에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출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음문석이 연기한 양배는 호포항의 목수로,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극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이다.
음문석은 2005년 'SIC'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뒤 댄서와 예능, 방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7년 SBS 드라마 '귓속말'을 계기로 배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열혈사제', '범죄도시2', '모범택시3' 등을 통해 독보적인 개성의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호프'의 양배를 만나 배우로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냈다.
"캐릭터를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배우는 '이 캐릭터를 잘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거든요. 요즘 무대인사를 다니다 보면 아직 저를 모르는 분들도 30~40% 정도는 계세요. 그래서 제가 먼저 '우리 집에 있다니께요' 하고 대사를 치면, 관객분들이 '어머' 하면서 제 어깨를 툭 치며 반응해주세요. 그럴 때마다 '아, 음문석이라는 배우보다 양배라는 캐릭터가 먼저 각인됐구나'라는 걸 실감해요. 완전히 '양배화'됐다는 느낌이 들었죠."
양배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까지는 치밀한 캐릭터 구축 과정이 있었다. 음문석은 나홍진 감독과의 첫 오디션에서부터 캐릭터의 말투와 행동, 사소한 감정선까지 함께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양배만의 결이 완성됐다고 돌아봤다.
"처음 오디션을 볼 때 감독님과 티타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호프'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게 있었는데, 극 중 배경은 전남인데 대사에서는 충청도 사투리 뉘앙스가 느껴졌거든요.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실제 그 지역에서도 그런 말투를 많이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충청도 출신이라 익숙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오디션 직전에 '그럼 이번 대사를 충청도 사투리로 해볼 수 있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원래 쓰던 사투리라 자연스럽게 연기했죠. 오디션 장면은 범석과 파출소에서 대화하는 신이었어요. 저는 있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상대는 계속 믿어주지 않잖아요. 양배 입장에서는 굉장히 짜증나는 상황이었는데, 연기하는 도중 감독님이 피식 웃으시더라고요. 음문석으로 생각했다면 '내 대사가 웃긴가?' 했을 텐데, 양배에 몰입하니 오히려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 덕분에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오디션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나왔는데 '이번에 같이 가자'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 순간은 정말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뻤죠."
오디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음문석은 곧 양배라는 인물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뜻밖의 일상 속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저에게, 양배에 대해 이야기하신 게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런데 절대악이다'였어요. 처음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양배 캐릭터를 설명해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문석 씨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들, 안 좋은 사람들은 하수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잡혔다. 양배는 잡히지 않는다' 그 말이 저는 어려웠어요. 오디션 붙고 나서 기분 좋은 건 잠시였고, 캐릭터를 빨리 찾아야 하는데 '이 캐릭터를 어떻게 찾지' 싶었죠. 사람들도 많이 관찰하고, 배우들 나름의 루틴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런 정신학적인 자료들도 찾아봤는데, 딱 맞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누나 조카가 쪽가위를 가지고 놀다 입에 넣으려고 해서 누나가뺏었어요. 누나는 뺏고, 아이는 웃고. 그 일상의 모습이 저한테는 양배의 캐릭터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무서워 보였어요. 아이의 행동이 무서운데, 정작 아이는 해맑게 웃고 다른 행동을 하고. 이게 의도한 게 아니라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행위인데, 이런 것들이 자꾸 생각나니까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상한 서스펜스로 느껴지는 거죠. 그렇게 캐릭터를 잡았어요."
음문석은 양배를 단순히 수상한 인물이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인물로 해석했다. 그는 양배가 영화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도 털어놨다.
"양배 자체가 동네에서 아무도 모르는, 되게 이상한 친구잖아요. '얘가 여기 사는 애가 맞아?' 싶은. 파출소에 있는 분이라면 누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을 텐데, 끝자락에서 은둔 생활 하면서 밖에 한 번도 나와보지 않은 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상한 얘기를 하잖아요.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양배를 고민했던 것처럼 감독님도 '이 친구가 있어야 더 미스터리하고 서스펜스를 주기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게 제 추측이에요."
음문석은 양배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자신만의 전사와 논리를 만들어뒀다. 관객에게 직접 드러나지 않는 설정까지 세밀하게 채워 넣으며 캐릭터의 세계를 완성했다.
"(칼리를) 수십 번을 쐈다고 생각했어요. 한 방에 맞출 수 있는 애가 아니거든요. 꿩을 잡으려고 했는데,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이상한 한 걸 발견한거죠. 또 집에도 마네킹들이 많은데 그건 양배의 장난감인겁니다. 애들이 색종이 그림 그릴 때 예쁘게 안 그리잖아요. 저한테는 놀이였어요. 성인의 시점으로 보면 이상한데, 아이 시점에서 보면 장난감이 많은 거죠."
음문석ⓒ고스트 스튜디오
허름한 옷차림과 떡진 머리,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하관까지. 양배의 강렬한 인상은 실제 음문석의 얼굴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가짜 치아를 하고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제 입술 안에 침이 흐르는데, 틀니같이 껴놓으니 침이 안 생겨요. 몇 마디만 하면 (입술이) 붙어 올라가고. 그런 것들이 중간중간 저를 더 양배스럽게 만들어주셨어요. 특수분장 했냐, 시간 얼마나 걸렸냐, 오래 걸렸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사실 오래 걸리지 않아요. 분장 시간이 20분도 안 걸려요."
특히 영화 후반부 고양이를 둘러싼 장면은 개봉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음문석은 그 장면을 연기할 때도 양배의 속내를 끝까지 확정하지 않는 데 집중했다.
"고양이도, 양배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마침표를 찍는 순간 걸릴 것 같았거든요. 고양이를 실제로 본 거예요. 그럼 연기라는 게, '얘는 걸리지 않는다'가 되려면 저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관객이 보기에) 알고 한 건지 모르고 한 건지, 양배 본인도 몰라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사 톤을 들어보면 애매해요. 확신이 없어요. 저도 봐도 이상할 정도로 미묘한, 그게 저만 알고 있는 서브 텍스트였어요. 도덕적인 관념으로 접근하면 뉘앙스가 들통나요. 제가 몰라야, 보는 사람들도 몰라요. 이게 어떨까 감독님께 여쭤봤는데 오케이해주셨어요."
영화를 둘러싼 해석은 캐릭터를 넘어 소품과 의상, 작은 설정 하나까지 확장됐다. 음문석은 관객들이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호프'가 영화다운 영화라고 느끼고 있었다.
"성기 모자, 이런 디테일까지 짚어주시는 반응들을 보면서 '여기까지 생각했다고?' 하고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브랜드가 나오면 안 되니까 지운다든지, 그런 것들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우리 영화가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들고, 머리가 하는 영화구나 싶었어요."
음문석은 이번 작품을 통해 나홍진 감독의 연출 방식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배우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보다 캐릭터의 틀을 명확하게 세운 뒤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끄는 방식이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제가 이야기했을 때 가만히 생각하시고 해주신 말씀이 '양배라면 그럴 수 있어요, 그거 해주세요'였어요. 캐릭터를 랜덤으로 펼쳐놓고 돌아다니게 하는 게 아니라, 틀을 정확하게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최대한 양배가 채울 수 있게 해주셨어요.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마음대로 편하게 하세요'도 아니고, '이대로만 해주세요'도 아니고, '여기에서 양배는 이 모습이 있어야 하고,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동선 안에서, 그 느낌 안에서 연기를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나오는 감정,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살려주셨어요."
그의 지나온 길은 결코 평탄하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가수, 댄서, 예능인 등 수많은 영역을 넘나들면서도 오직 '표현하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지난날을 그는 무던하게 돌이켜보았다.
"저도 되돌아보면 많은 걸 했더라고요. 개그맨 빼곤 다 했어요. 가수, 댄서, 예능, 정말 많은 걸 했는데, 그래도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건 '이쪽 일에서 벗어나지 말자'였어요. 다 연동이 되거든요. 춤, 가수, 예능, 리포터도 했다가, 연기를 배우면서 연기를 하고, 연출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단편영화도 찍고, 상업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고요."
양배 이후 음문석의 다음 행보는 스크린 주연이다. 최근 해외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액션영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3개월 동안요. 2022년 1월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했어요. 당시에 폭동,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 때문에 국제공항이 점령당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마지막으로 착륙한 비행기가 한국 비행기였어요. 감독님이 이 실화를 모티프로 하셔서, 제가 최민이라는 역할로 나와요. 사랑하는 사람이 그 비행기에 타 있고, 그 사람을 구하러 가는 액션영화를 찍었어요."
배우 뿐 아니라 연출자로서의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직접 연출한 단편영화 '미행'으로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그는 현재도 새 단편영화를 편집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가고 있다.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은 배우뿐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큰 자극이 됐다.
"더 집요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출도, 단편영화를 찍긴 했는데 후반작업을 어설프게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더 집요하게, 연기도 어설프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야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연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생각한 이야기를 실현화하는 걸 좋아해요.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 오자마자, 이상일이라는 연기를 정말 잘하는 친구를 섭외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배우 음문석의 목표는 더 높은 곳이 아니라 더 단단한 성장이다. 한 작품, 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예전부터 배우 인생은 계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금 낮더라도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고 싶었죠. 이번에 나홍진 감독님을 만나면서 큰 도약을 했다고 느끼지만,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다음 계단을 오르려고 해요. 배우들은 작품을 할 때마다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하잖아요. '호프'를 하면서 저 역시 제 안에 있던 낯설고 지저분한 얼굴을 발견했어요. 앞으로도 그런 새로운 모습을 계속 찾아가는 배우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