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부여받은 사람” 이영표가 밝힌 한국축구 개혁의 출발점 [기자수첩]
입력 2026.07.28 08:39
수정 2026.07.28 08:39
“책임 부여받은 사람이 책임감 있게 감독을 뽑아야”
벤투 감독 투명하게 선임한 김판곤 위원장이 선례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왼쪽부터)-정몽규 축구협회회장-이임생 기술총괄이사.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이 책임감 있게 감독을 뽑아야 한다. 전 세계가 그렇게 한다.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
이영표 K-축구 혁신위원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를 둘러싼 소신을 밝혔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임될까. 과거 대한축구협회에는 기술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다. 대표팀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세계 축구 흐름에 맞는 감독 후보군을 추천하는 핵심 기구였다.
이후 2018년 축구협회는 전문성 강화를 명분으로 이를 국가대표팀감독선임위원회로 개편했고, 약 1년 뒤 다시 지금의 전력강화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명칭이 바뀌는 동안에도, 정작 이 기구가 제 역할을 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협회 수뇌부가 이미 낙점해 둔 인사를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거수기'에 머물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위원장에게 실질적인 권한도, 감독을 소신껏 발굴할 시스템도 주어지지 않은 채 책임만 떠안기는 구조가 수십 년간 되풀이됐다.
반대로 전강위가 제 기능을 했을 때 어떤 결실을 맺는지는 2018년 김판곤 전 위원장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준다. 당시 정몽규 회장으로부터 '감독 선임에 대한 전권'을 약속받은 김판곤 위원장은 수많은 해외 감독 후보를 면접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투명한 절차 끝에 파울루 벤투 감독을 낙점했다. 벤투호는 4년간 숱한 비판과 흔들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철학을 지켰고, 결국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로 보답했다.
김판곤 위원장 역시 주어진 권한을 시스템과 절차에 맞게 활용했고, 결과까지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이영표 위원이 말한 "전 세계가 감독을 뽑는 방식"이었고, 정답이었다.
그러나 김판곤 위원장이 물러난 뒤 전력강화위원회는 다시 예전의 무능한 기구로 되돌아갔다. 2023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후임 마이클 뮐러 위원장은 선임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정몽규 회장 스스로 클린스만 선임을 "자신이 결정한 일"이라 밝히며, 전력강화위원회가 유명무실했음을 인정한 셈이 됐다.
투명한 절차에 의해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한 김판곤 전 위원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24년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한술 더 떴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하는 파행 속에서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갑작스레 주도권을 잡고 선임을 강행했다. 제대로 된 평가표도, 면접 절차도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결정되자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결국 한국 축구가 체질을 개선하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전력강화위원회의 역할과 위상부터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회장이나 협회 임원진이 감독 선임에 개입하는 악습을 끊어내고, 완전한 독립성과 전권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새로 선임될 전력강화위원장은 감독을 뽑은 이유와 철학을 대중 앞에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인물을 찾는 것 또한 한국축구가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데이터에 기반한 상시적 후보군 관리도 필요하다. 감독을 급히 교체할 때마다 허둥지둥 후보를 찾는 '벼락치기' 선임은 이제 끝나야 한다. 전력강화위는 평상시에도 세계 축구 트렌드를 분석하고, 한국 축구 철학에 맞는 감독 리스트를 꾸준히 갱신해야 한다.
밀실 행정과 권력자의 독단으로 감독을 뽑던 시대는 끝났다. 이영표 위원의 말처럼 전력강화위원장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고, 프로세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무너진 한국 축구를 다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