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정일영의 부상과 석학 강의 품은 OTT…AI 시대, 정보보다 ‘해석’ [이슈]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7.27 13:57
수정 2026.07.27 13:58

생성형 AI 발전으로 검색·번역·요약 평준화…지식 전달자보다 경험 갖춘 해설자 부상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검색과 번역, 요약이 빠르게 평준화되면서 인문학·교양 콘텐츠의 경쟁력도 ‘지식의 양’에서 인간의 경험과 해석으로 옮겨가고 있다. 프랑스 문화 전문가 정일영 교수와 출판사 편집자 김민경, 북플루언서 쩜처럼 지식을 자신의 삶과 취향을 통해 전달하는 이들이 팬덤을 형성하는 한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름과 전문성이 검증된 석학들의 강의를 확보하고 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누가 어떤 관점으로 설명하고 선별하느냐가 콘텐츠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부상한 것이다.


정일영 인하대학교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의 에세이 ‘결국 어떻게든 되더라고요’가 지난 22일 출간됐다. ⓒ논픽션

26일 논픽션에 따르면 정일영 인하대학교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의 에세이 ‘결국 어떻게든 되더라고요’가 지난 22일 출간됐다. 책에는 프랑스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약 30년간 시간강사로 지낸 과정과 60대에 방송인으로 주목받게 된 이후의 변화가 담겼다. 정 교수는 이달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고 모교인 인하대 초빙교수로 임용된 데 이어,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 푸조의 ‘컬처 큐레이터’로도 발탁됐다.


정 교수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출연한 유튜브 채널 ‘침착맨’ 콘텐츠였다.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 현지 생활을 거침없는 화법과 유머로 풀어낸 출연분이 화제를 모았다. 26일 기준 정 교수가 출연한 침착맨 콘텐츠들은 ‘프랑스에서 살아남기’ 특강이 약 878만회, ‘훔치고 싶은 프랑스의 명화’가 약 316만회가 재생됐고 두 영상의 조회수를 합하면 약 1200만회에 육박한다.


대중이 반응한 지점은 프랑스에 관한 정보만이 아니었다. 파리 제8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고도 교수 임용에 거듭 실패했던 경험, 오랫동안 시간강사로 살아오며 겪은 좌절,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말하기 방식이 정일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이야기의 소재이고, 실제 콘텐츠의 중심에는 정 교수가 그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놓여 있다.


그가 소비되는 방식은 생성형 AI 이후 지식 콘텐츠가 어디에서 차별점을 찾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의 역사와 언어, 문화적 특징은 AI를 통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할 수 있다. 부족한 것은 정보 자체보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믿고 어떤 관점으로 이해할지를 판단할 기준이 됐다.


AI 콘텐츠에 대한 수용도 조사에서도 인간의 검증과 책임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6개국에서 국가별 약 2000명을 조사한 결과, AI가 전부 제작한 뉴스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인간이 주도하고 AI가 보조한 뉴스에는 43%, 전부 인간이 제작한 뉴스에는 62%가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AI가 사용되더라도 출처가 분명한 인간의 판단과 검증을 요구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인문학 콘텐츠가 생성형 AI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알쓸신잡’, ‘차이나는 클라스’처럼 지식을 예능의 문법으로 전달한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최근 눈에 띄는 변화는 방송사가 만든 포맷 안에 전문가가 출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설자 개인의 취향과 말투가 하나의 지식 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 ⓒtvN

민음사 해외문학팀에서 6년째 근무 중인 김민경 편집자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 편집자는 유튜브 ‘민음사TV’와 머니그라피의 ‘B주류초대석’에서 책과 영화, 만화에 관한 자신의 취향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출판계 아이돌’로 불리고 있다.


시청자가 한 시간이 넘는 ‘B주류초대석’을 보는 이유는 작품의 줄거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무엇을 고르고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지, 김 편집자의 선택과 판단을 참고하기 위해서다. 책 뒤에 가려져 있던 편집자의 선별과 해석 기능이 콘텐츠 전면에 등장하면서 직업인 개인이 팬덤의 대상이 됐다.


북플루언서 ‘쩜’ 신시연은 같은 역할을 숏폼으로 풀어낸다. 본업인 댄서의 특성을 살려 춤을 추다 책을 꺼내 소개하는 방식으로 틱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인기를 모았다. 그가 소개한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과 정대건의 ‘급류’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젊은 독자들의 반응은 출판시장 일부에서도 나타난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10·20대의 시집 구매량은 전년보다 51.9% 증가했다. 특히 10대 구매량은 97.2% 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책과 인문학이 지식 습득의 수단을 넘어 취향과 팬덤, 생활양식을 표현하는 콘텐츠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을 중심으로 나타난 변화는 플랫폼의 콘텐츠 전략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웨이브는 지난 23일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시즌 1∼3을 모은 스페셜관을 열었다. 노벨상 수상자 15명을 포함한 세계 석학 92명의 강연 499편을 오는 8월까지 순차 공개한다. 이용자들은 경제·정치·철학·과학·역사·예술·환경 등 주제별로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기술 활용이 늘어날수록 질문을 설계하고 정보에 의미를 붙이는 인문학적 역량이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정일영과 김민경, 쩜이 보여주는 경쟁력은 같은 정보를 자신의 경험과 취향으로 해석해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정보 접근이 쉬워진 시대, 콘텐츠의 경쟁력은 지식의 양보다 누가 어떤 경험과 맥락으로 이를 해석하는지에서 나온다.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