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확대에 중기는 '난감'…"준비할 사람이 없다"
입력 2026.07.25 07:14
수정 2026.07.25 07:14
예정처 "ESG 공시는 여력 있는 기업의 선택"
정부, 2027사업연도부터 법정공시
"담당자부터 다시 뽑아야…통합 지원 필요"
정부가 2028년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 의무화를 시작하지만, 정작 탄소전환 부담이 큰 중소·중견 제조기업은 제도 사각지대에 남을 수 있다는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이 나왔다. ⓒ뉴시스
ESG 공시가 법정공시로 확정됐지만 중소·중견 제조기업들은 "이제부터가 더 막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수년간 제도 도입을 미루는 사이 ESG 전담 조직을 축소하거나 담당 인력을 다른 업무로 돌린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시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은 인력과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하지만 정부 지원은 플랫폼과 컨설팅 중심에 머물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ESG 공시, 누가 왜 하는가' 보고서는 국내 상장사의 자발적 ESG 공시 결정요인을 분석한 결과 ESG 공시는 결국 '여력이 있는 기업의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업력이 오래된 중소·중견 제조기업은 기존 재무공시 체계에 머물러 ESG 대응이 상대적으로 늦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업력 23년 미만 기업의 자발적 ESG 공시율은 41.5%였지만, 업력 64년 이상 기업은 22.6%에 그쳤다.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도 뚜렷했다. 자산 하위 20% 기업의 ESG 공시율은 0%인 반면, 상위 20%는 76.2%에 달했다.
제조업 공시율도 22.5%로 전체 평균(27.7%)을 밑돌았다.
예정처는 "오래된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ESG 공시의 사각지대"라고 분석했다.
자산 규모만으로 공시 대상을 정할 경우 탄소 리스크가 높은 중소·중견 제조기업이 계속 제도 밖에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정처는 ETS(배출권거래제)와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탄소규제 노출 여부를 함께 고려하고, 업력이 길고 규모가 작은 제조기업을 파일럿 테스트와 ESG 컨설팅 등 공시 지원 대상에 적극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일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 최종안을 발표했다.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2027사업연도부터 ESG 공시 의무가 적용되며, 2028년 사업보고서부터 공시된다.
공시 대상은 2029년 연결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확대되며 정부는 2030년에는 연결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기업 부담 우려에 정부는 도입 초기 3년간 한시적 면책(Safe Harbor)을 적용하고 Scope3(공급망 배출량) 공시는 3년 유예하기로 했다.
파일럿 테스트를 비롯해 한국형 기후리스크 통합플랫폼, 산업공급망 ESG 플랫폼 구축, ESG 종합컨설팅 등을 통해 기업의 공시 준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의 공시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시행이 늦어진 사이 공시를 준비할 인력부터 사라져 플랫폼 구축이나 종합 컨설팅만으로는 공시를 이행하는데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SG 업계 관계자는 "초기에는 정부가 ESG 공시 도입을 예고하면서 중소·중견기업들도 담당자를 두고 준비했던 곳이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제도 시행이 계속 늦어지면서 ESG 조직을 축소하거나 담당자를 다른 부서로 보내고, 일부는 컨설팅 업계로 이직한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법정공시가 확정되면서 다시 사람부터 뽑고 데이터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은 회계법인이나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은 담당자 한 명 채용하는 것조차 부담인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들이 필요한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실제 공시를 하기 위한 준비 방법"이라며 "무엇을, 어떤 순서로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실무 가이드와 데이터 구축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산업부와 기후부, 중기부 등 부처별로 플랫폼과 지원사업을 각각 운영하는 방식보다 정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법정공시가 시작되는 만큼 이제는 제도 도입 여부보다 중소기업이 실제 공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