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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호프' 무모한 도전 아냐, 오히려 가장 안전한 선택" [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7.24 16:08
수정 2026.07.24 16:08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이라는 쾌거, 그리고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쓸어 담은 폭발적인 흥행 신기록. 한국 영화가 지난 4년간 비워두어야 했던 칸의 가장 높은 무대를 다시 밟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홍진 감독이다. 688만 관객을 동원하며 전국적인 해석 열풍을 일으켰던 '곡성'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호프'가 얼어붙었던 극장가 판도를 다시 흔들고 있다.


나홍진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투자 위축과 제작 환경 악화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안전한 기획이 판을 치는 요즘이다. 이러한 흐름을 역행해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호프'라는 판을 짠 배경을 들여다보면, '곡성' 이후 미국을 오가며 시장의 변화를 미리 감지했던 나홍진 감독의 계산이 깔려 있다.


"'곡성' 끝내고 폭스랑 전속 계약 연장 문제로 미국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 이 시장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올 거라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예감을 가지고 있었죠. 한국 영화는 한 편에 다양한 장르를 잘 버무리는 게 특징이라고 외국 기자분들이 말씀하시잖아요. 그걸 좀 더 장르 쪽으로 축을 옮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수 시장만 고려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저문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외부에서도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으면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쪽에 집중했습니다.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팬데믹 기간을 포함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0년이라는 긴 공백이 존재했다. '호프'의 제작 기간이 유독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복잡한 프리프로덕션 공정이 있었다.


"이 정도면 초고가 나온 것 같다고 생각한 게 2018년이에요. 그 이후엔 준비 과정이었죠. 공정이 되게 많았고, 이야기를 구체화·심화시켜야 했고, 무엇보다 어떻게 메이킹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는데 준비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촬영, 후반, 장비까지 요소가 너무 많아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팬데믹 이후에 바로 들어간 게 아니라, 그 기간 내내 계속 준비를 했던 거죠."


'추격자', '황해', '곡성'을 거치며 쌓아 올린 독보적인 스릴러의 문법. 10년 만의 신작 '호프'는 대중이 나홍진이라는 이름에 기대했던 지독한 어둠 대신 '외계인'과 '희망'이라는 완전히 뜻밖의 카드를 전면에 내세운다.


"'곡성'에서는 현실의 비극을 초자연적인 지점까지 파고들었다면, 이번엔 우주적인 시선에서 이 현상들을 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 시선을 시각화하고 대변할 대상으로, 제가 마음대로 형상을 디자인할 수 있는 '외계인'이라는 피사체를 선택하게 된 겁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 각자만의 절실한 목적과 희망이 있습니다. 마을을 구하려는 사람도, 살아남으려는 사람도, 아이를 살리려는 외계인도요. 그 희망들이 부딪히며 비극을 만들어내지만, 비극을 마주하더라도 우리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소중한 것들을 다시 지켜내고 부활시켜야 합니다. 관객분들도 영화가 끝난 후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그 '희망'을 품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호프'라는 제목을 담았습니다."


나홍진 감독ⓒ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이후 국내 개봉에 이르기까지, '호프'는 완성도를 다듬는 미세한 편집 과정을 거쳤다. 칸에서 첫 선을 보였던 버전에서 일부 장면의 분량을 조정하고 특정 캐릭터의 서사를 재구축해, 2시간 4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다듬었다.


"중간에 등장하는 목수 양배 역할의 음문석 씨 장면들을 편집에서 좀 덜어냈었는데, 그게 계속 아쉬움으로 남더라고요. 그래서 후반 작업에서 그 친구 관련 샷들을 다시 복구시켜서 캐릭터를 강화했습니다. 대신 전체 길이가 길어지니까 필수적이지 않은 몇 장면을 덜어내며 균형을 맞췄죠. 2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관객분들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찍어둔 이야기나 영화에 손상이 가는 축소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 여러분이 이 시간 동안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몰입하실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SF 장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외계인의 형상을 현실감 있게 구축하는 일은 연출자에게 또 다른 과제였다. 구상 단계부터 스크린 위에 최종 구현되기까지 긴 디벨롭 과정을 거쳤다.


"타블로이드지에 나오는 정체불명의 외계인 이미지들, 그 전통적인 디자인에서 시작했어요. 헐리우드에서 큰 작품들 하시는 해외 디자인팀들과 작업했는데, 좋은 설명과 조언을 워낙 많이 해주셔서 계속 변화를 겪게 됐죠. 한 캐릭터를 위해 100개를 만들어놓고 1개만 채택되는 식이었어요. 디자인이 끝났다 싶으면 촬영 준비 단계에서 또 실체화시키면서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습니다. 게다가 대낮 장면이라 모션 블러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실제로 디자인이 명확히 드러나는 컷은 몇 개 안 됩니다. 마음에 드는 샷도 있고 아닌 샷도 있어요. 다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감독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가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건 분명해서 미련은 없습니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대중에게 무거운 신뢰감을 주는 연출자임에도, 신작을 스크린에 올리기 직전 마주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의 크기는 여전히 무겁다.


"저는 조심성이 많은 사람 같아요. 객석에 앉은 한 분 한 분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저도 관객으로 영화를 볼 때 필름메이커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거든요. 제 영화도 관객분들이 그렇게 봐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 이야기를 쓸 때부터 그분들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요. 그게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입니다."//인용을 받쳐주는 기사 문장이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문장이 아님. 이거 유의해서 브릿지 서술문.


‘침체된 한국 영화를 구할 구원투수’니, ‘한국 영화의 전환점’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들이 연일 쏟아진다. 산업의 운명을 짊어진 듯한 거창한 프레임이 씌워지는 상황이지만, 정작 나홍진 감독의 시선은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부담됩니다만, 주체는 관객 여러분께 있는 거죠. 이 작품이 조력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키는 관객분들이 쥐고 계세요. 부담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영화의 결말부가 마치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듯 묘한 여운을 남긴 탓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속편을 고려하고 만든 엔딩이 아니냐는 시선 속에서, 후속작의 가능성을 결정짓는 기준점은 언제나 단 하나, 관객의 반응이다.


"칸에 갔을 때도 '왜 제목에 파트 1이 없냐'면서 난리를 치길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거 안 한다' 하고 말았는데요. 후속편 여부는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얼마나 예뻐해 주시고 찾아주시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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