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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선 베테랑, 도장에선 초보…절권도가 가르쳐준 '겸손' [취미 처방전]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7.26 06:00
수정 2026.07.26 06:00

박상준 순천향대 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인터뷰

건강 위해 시작한 절권도, 삶과 진료를 바꾸다

환자를 이해하는 시선도 달라져…“함께 운동하며 공감”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명의들에게도 일상에 활력을 더하는 셀프 ‘처방전’이 있습니다. ‘취미 처방전’은 진료실을 벗어난 의료진의 특별한 취미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박상준 순천향대 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절권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관장님과 처음 대련했을 때, 사람이 정말 만화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더라고요. 그 순간 ‘이 사람의 10분의 1만 배워도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상준 순천향대 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지금도 2년 전 첫 대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상대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그날이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은 그를 절권도의 세계로 이끌었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은 어느새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꿔놓았다.


병원에서는 당뇨병과 비만, 갑상선 질환 등을 진료하는 의사지만 퇴근 후 그는 절권도 수련생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도장을 찾아 땀을 흘리고,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시간이나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짧은 틈에도 동작을 반복하며 몸에 익힌다. 지금도 관장과 대련하면 한 대도 맞히지 못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사실을 즐겁게 이야기한다.


절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박 교수는 “환자들에게는 늘 운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저는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며 “혼자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평소 관심이 있던 격투기를 떠올렸고, 병원 근처에 절권도 도장이 있어 배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절권도의 배움, 진료실을 바꾸다

절권도는 박 교수의 체력만 키워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절권도를 통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겸손’을 꼽았다. 박 교수는 “운동을 하다 보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몸으로 직접 마주하게 된다”며 “그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부족한 점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지금은 ‘저 사람은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고, 병원에서도 다른 의료진과 교수님들을 더 존경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순천향대 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절권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절권도는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환자에게 “왜 운동을 안 하셨어요?”라고 먼저 물었다면, 이제는 “왜 운동을 못 하셨어요?”부터 묻는다. 직접 운동을 해보니 시작하는 것도,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결과다.


박 교수는 “누구에게나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며 “환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기다려주고, 먼저 들으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진료실 풍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근력이 부족한 환자가 외래를 찾으면 그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다. 직접 스쿼트 자세를 잡고 환자와 함께 앉았다 일어나며 운동법을 알려준다. “운동하세요”라는 한마디보다 몸으로 함께 해보는 것이 환자들의 이해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무릎이 좋지 않은 분들은 제외하지만 함께 스쿼트를 해보면 절반 이상은 ‘집에서도 꼭 해보겠다’고 하신다”며 “의사가 함께 움직여주면 환자들도 운동을 훨씬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미를 넘어 삶의 철학으로
박상준 순천향대 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박 교수는 절권도의 철학 역시 의료 현장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공감하는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의 철학은 ‘물이 되라’다.


그는 “절권도는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배우는 무술”이라며 “수련을 반복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도 당황하기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 현장 역시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며 “환자의 상태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절권도는 몸뿐 아니라 그런 태도도 함께 가르쳐준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절권도를 통해 얻은 경험을 의료진에게도 권하고 싶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며 “운동을 하면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 자체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이 힘든 운동을 해보면 마음의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운동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절권도는 이제 박 교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한 또 하나의 수련이자, 환자를 이해하는 시야를 넓혀준 배움의 과정이 됐다. 오늘도 그는 도장에서는 초보 수련생으로 땀을 흘리고,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음 날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나누고 있다.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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