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은 입지선정 근거가 될 수 없다…호남 반도체 구상의 ‘빈칸’ [기사수첩-정책경제]
입력 2026.07.06 07:00
수정 2026.07.06 07:00
초정밀 산업 앞 균형발전 논리
전력·용수 실행표 빠진 800조원 구상
균형발전 필요하나, 검증 면죄부 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 공장(팹·Fab)을 전남광주특별시에 짓기로 약속한 29일 오후 하늘에서 바라본 광주 북구 첨단3지구에서 복합단지 조성 사업이 한창이다. ⓒ뉴시스
정부가 800조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을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처럼 내세우면서 입지 타당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따져야 할 질문은 호남이냐 다른 지역이냐가 아니다. 균형발전이라는 당위가 기업 투자 리스크와 전력·용수 같은 물리적 제약을 대신할 순 없다는 점이다.
호남이 산업화 과정에서 대규모 생산거점 유치에 소외됐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수도권과 영남권에 경제력과 제조업 기반이 집중됐고, 호남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인구 유출을 겪어왔다.
그러나 여기서 곧장 ‘따라서 호남에 반도체 팹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건너뛰면 논리가 끊어진다.
지역 불균형 통계는 균형발전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초정밀 반도체 생산기지의 입지 적합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멋들어진 이상만으로 완성될 순 없다. 고순도 용수, 안정적 전력, 협력업체 생태계, 물류망 등 수많은 여건이 맞아야 한다. 지역균형의 도덕적 정당성으로 이런 기술적·산업적 검증을 건너뛸 수는 없다는 뜻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전력과 용수 공급이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6.3GW의 전력과 하루 65만t의 용수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접속선로, 다목적댐, 도수관로, 대체 수자원, 하수 재이용수도 거론했다. 하지만 이것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는 방침이지, 검증 가능한 실행표라고 보기 어렵다.
서남권은 물이 넉넉한 지역이 아니다. 광주·전남은 최근에도 장기 가뭄으로 동복댐과 주암댐 저수율 급락, 제한급수 우려를 겪었다. 이런 지역에 하루 65만t의 물을 쓰는 생산기지를 세우려면 어느 댐과 수계에서 얼마를 끌어올지, 가뭄 때 생활용수와 산업용수 배분은 어떻게 할지, 대체 수원은 언제까지 확보할지부터 밝혀야 한다.
전력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호남의 태양광과 해상풍력 잠재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흔들린다. 초정밀 반도체 공정은 순간적인 전력 품질 저하에도 생산 차질과 수율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생에너지를 쓰겠다면 보완 전원, 송전망, 계통 안정화 계획이 함께 나와야 한다. 햇빛과 바람이 많다는 설명만으로 고품질 전력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호남에 미래 산업이 필요하다는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균형발전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반도체 클러스터의 입지 검증을 대신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