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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연프’도 설렘만으론 부족하다…‘하트시그널5’의 딜레마 [D:방송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6.30 08:53
수정 2026.06.30 08:54

자극·속도 중심으로 재편된 연프 시장서 길 잃은 느린 호흡

연애 리얼리티의 원조 격인 채널A ‘하트시그널’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특유의 감정선과 시그널 추리, 조심스럽게 쌓아가는 설렘을 앞세웠지만 마지막회를 앞둔 현재까지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했다. 연애 예능 시장이 빠르게 변한 가운데, 원조 연애 프로그램의 장점이었던 느린 호흡과 섬세한 감정선이 더 이상 예전만큼 강한 화제성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널A

29일 닐슨코리아 집계를 종합하면 ‘하트시그널5’는 지난 4월 첫 방송에서 전국 기준 0.6%로 출발한 뒤, 11회까지 줄곧 0%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직전 시즌인 ‘하트시그널4’ 역시 첫 방송은 0.5%로 시작해 초반 부진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출연자 김지영, 김민규, 유이수의 삼각관계가 뒤늦게 급부상하며 마지막회에서는 최고 시청률 3.05%를 기록,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을 돌이켜 보면 시즌5의 부진은 더 뼈아프게 읽힌다.


‘하트시그널’의 강점은 분명하다. 누가 누구에게 문자를 보냈는지, 식탁에서 누구를 바라봤는지, 짧은 대화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는지를 추리하는 재미다. 출연자들은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조심스럽게 호감을 표현하고, 패널들은 그 작은 신호를 해석하며 시청자와 함께 설렘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의 연애 예능 시장은 그때와 다르다. 설렘만이 아니라 갈등, 관계 정치, 방송 밖 여론전까지 함께 소비되는 장르가 됐다. ‘나는 솔로’는 날것의 대화와 직접적인 감정 표현, 기수별 강한 캐릭터로 화제성을 만든다. ‘환승연애’는 전 연인이라는 관계 자체가 주는 감정의 깊이, ‘솔로지옥’은 비주얼과 노골적인 경쟁 구도로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요즘 서바이벌 예능은 의외로 많이 없고, 모든 연애 프로그램이 서바이벌 예능화하고 있다”며 “과거 ‘더 지니어스’처럼 인간관계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것이 장르적 재미였는데, 최근 그런 게임쇼들은 줄어들었고 그 영역의 재미가 연애 예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애 프로그램이 과해진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연애 프로그램이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목적에는 로맨스도 있지만 인간 군상을 보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짚었다.


이런 환경에서 ‘하트시그널5’의 느린 호흡은 양날의 검이 됐다. 과거에는 미묘한 눈빛과 감정의 여백이 낭만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시청자들은 회차마다 분명한 전환점과 강한 장면을 기대한다. 그러나 ‘하트시그널’식 연출은 감정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다. 이 호흡이 브랜드의 정체성이지만, 동시에 지금의 빠른 연프 소비 방식과 충돌한다.


‘하트시그널5’ 12회 예고 ⓒ채널A

출연자 개인의 화제성도 예전만큼 크게 터지지 않았다. 출연자 한 명이 대중의 관심을 끌거나, 특정 러브라인이 관심을 키우면 프로그램 전체의 화제성이 살아난다. 반대로 출연자 캐릭터가 흐릿하거나 관계 구도가 선명하게 잡히지 않으면 시청자는 다음 회를 기다릴 이유를 잃는다. ‘하트시그널5’는 출연자 박우열과 강유경을 필두로 시즌 막바지까지 여러 관계 변화를 보여줬지만, 시즌 전체를 견인할 만큼의 서사를 각인시키는 데는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에 일반인 출연자 리스크도 겹쳤다. 최근 특정 출연자를 둘러싸고 사생활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의혹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런 논란은 연애 리얼리티의 몰입을 크게 흔든다. ‘하트시그널’은 이 리스크에 특히 취약하다. 출연자 개인의 매력과 미묘한 감정선에 크게 기대는 포맷이기에 출연자 한 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그 사람의 시선, 문자, 선택을 해석하는 재미도 함께 약해진다.


이 때문에 제작 현장에서도 일반인 리얼리티를 다루는 편집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연애 프로그램의 경우 일반인 출연자들의 실제 삶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인 만큼, 특정 인물이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소비되지 않도록 감정선과 관계 흐름의 균형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청자 몰입도를 높이되 출연자 보호와 현실적인 공감대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방송사가 우선적으로 두는 편집 방향”이라고 전했다.


감정선을 세게 편집하면 특정 출연자에게 비난이 쏠릴 수 있고, 조심스럽게 다루면 프로그램의 긴장감과 화제성이 낮아질 수 있다. 연애 예능의 고질적 문제인 일반인 보호와 재미 사이의 균형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하트시그널’처럼 섬세한 감정선을 브랜드로 삼아온 프로그램일수록 출연자를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아야 하는 폭이 좁아졌다.


‘하트시그널5’의 부진은 원조격의 연애 리얼리티가 쌓아온 문법이 지금의 소비 방식과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느린 설렘과 여백이 시청자를 붙잡았지만, 지금은 그 여백 사이를 채울 인물의 강도와 장면성이 더 중요해졌다. 설렘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자극으로 갈아탈 수도 없는 딜레마가 프로그램의 부진을 설명한다.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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