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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타살 음모론' 7년째…다시 추적한 그의 마지막 34일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입력 2026.06.27 08:00
수정 2026.06.27 08:00

전용기에서 곧바로 구치소로…보석 기각 후 상태 급변

공개되지 않았던 유서…마지막 동료도 “혼자 두지 말라”

“은폐보다 무능”

미국 뉴욕주 성범죄자 등록부가 2017년 3월 28일 공개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진. ⓒAP/뉴시스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이 뉴욕 맨해튼 연방구치소에서 숨진 지 7년이 지났으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공식 결론은 '자살'이지만, 교도관들이 정해진 순찰을 하지 않았고 일부 폐쇄회로(CC)TV는 고장으로 녹화되지 않았으며 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DNA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심지어 최초 확보한 올가미가 실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드러났다. 여기에 그가 미국 정·재계와 영국 왕실, 금융권 거물들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누군가 입을 막은 것 아니냐"는 음모론은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의혹을 검증하기 위해 FBI와 법무부 감찰관실(OIG) 자료, 교도소 기록,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엡스틴의 마지막 한 달을 다시 추적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결론은 뜻밖에도 화려한 음모보다 반복된 경고를 놓친 교도소의 총체적 실패에 가까웠다.


2019년 7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 전용기를 타고 뉴저지 테터보로 공항에 도착한 엡스틴은 FBI에 체포됐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대서양을 횡단하던 억만장자는 순식간에 미국에서도 악명 높은 맨해튼 연방구치소 수감자가 됐다.


입감 직후부터 충격은 시작됐다. 다른 수감자가 돈을 요구하며 협박했고, 당국은 그를 일반 수용동에서 특별수용동으로 옮겼다. 첫 심리 평가에서는 자살 위험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분류됐다. 당시만 해도 그는 보석 허가를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원이 보석을 기각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같은 방을 쓰던 니컬러스 타탈리오니는 엡스타인이 "올가미는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고 침대 시트를 창문에 묶거나 매트리스 아래 올가미를 숨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다고 증언했다. 결국 그는 7월 23일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했지만 동료 수감자의 신고로 목숨을 건졌다.


ⓒ 자료: 외신종합

NYT가 취재를 통해 확인한 핵심 증거는 당시 교도소도 알지 못했던 메모였다. 메모에는 "작별을 고할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 이라고 적혀 있었다. 또 엡스타인이 가까운 지인들과만 사용하던 독특한 표현도 포함돼 있어 진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NYT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 메모는 다른 재판 기록에 봉인되면서 교도소 심리 평가 과정에는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첫 자살 시도 이후 그는 새로운 동료 에프레인 레예스와 생활했다. 레예스는 엡스틴이 빨랫줄처럼 만든 천을 유심히 바라보자 곧바로 이를 변기에 버렸고, "내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다. 다른 시설로 옮겨지기 직전에는 교도관들에게 "절대 혼자 두지 말라"고까지 당부했다. 그러나 그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8월 9일 밤 엡스타인은 혼자 방에 남았다. 규정상 교도관은 최소 30분마다 확인해야 했지만 순찰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CCTV는 이미 수일 전부터 녹화가 되지 않고 있었고, 다음 날 아침 그는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응급조치 과정에서 현장은 훼손됐고 FBI는 DNA 확보도 하지 못했다. 이후 실제 사용한 올가미가 아닌 다른 천 조각이 증거로 보관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음모론은 더욱 커졌다.


타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취재 과정에서 이를 입증할 직접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수감자와 변호인, 자필 메모, 반복된 자살 시도 등은 엡스타인이 극단적 선택을 준비했다는 정황과 맞아떨어졌다.


음모론을 키운 것은 정부의 치밀한 은폐라기보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허술한 시설 관리, 부실한 초동수사였다. 교도관들은 경고를 여러 차례 받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현장 보존과 증거 관리 역시 실패했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감자 중 한 명을 재판정에 세우지 못한 것은 거대한 음모가 아니라 미국 연방 교정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였다.


ⓒ자료: 외신 종합

정인균 기자 (Ing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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