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여야 질타에 사과했지만…'투표용지 부족' 사태엔 면피성 발언만
입력 2026.06.23 17:46
수정 2026.06.23 17:48
여야 호통에 '불출석' 선관위 인사 출석
여야 공동전선에 자세 낮췄지만…책임론엔 "기억안나" "타 기관 책임"
고개 숙인 노태악·위철환 "사죄드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개혁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선관위 개혁에 공감대를 형성한 여야가 함께 공동전선을 펼치며 질타를 쏟아내자 자세를 낮췄지만, 책임론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앙선관위가 모두 관리하긴 어렵다" 등 면피성 발언이 이어졌다.
이른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연루된 전·현직 선관위 인사들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지방선거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여야는 당초 이번 사태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과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초점을 맞췄지만, 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오민석 전 서울시 선관위원장과 민소영 전 송파구 선관위원장 등 인사가 불참하면서 크게 반발했다.
이날 진행되는 기관 보고의 경우, 기한 내 출석요구서 송달이 어려워 법적 강제성이 없는 임의출석 형태로 이뤄졌다. 특히 다수 증인은 전날 출석을 통보받아 참석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여야는 "국민과 국회를 대하는 태도가 이래서 일이 터진 것"이라고 태도를 문제 삼았다.
여당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관위의 태도가 이래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조사를 통해서 참정권 훼손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데,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대항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야당 간사인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도 "일정이 촉박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엄중한 사안인 만큼 반드시 이 자리에 나왔어야 했다"며 "내 일도 책임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선관위) 회의만 한번 나가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니까 선관위 문제가, 참정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은 오히려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위철환 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이 전날 직접 출석을 당부했음에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오 전 위원장은 출석 요구서를 정식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출석하면 "이상하지 않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개혁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위 직무대행은 "전날 회의가 있었는데,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이 참석해서 특위와 국민에게 진상을 소상하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원칙적으로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조만간 참석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광호 서울시선관위 상임위원도 오 전 위원장과 전날 밤 통화한 사실을 언급, "오늘 국정조사 특위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며 "오 전 위원장은 요구서가 정식으로 오지 않았는데 나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고 답했다. 이에 오 전 위원장이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상현 위원장은 "다수 선관위원이 불출석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형태"라면서 "오민석·민소영 전 위원장의 출석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불출석을 고집한다면 국민적인 진상 규명 의지에 뜻이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도 "선관위 회의를 열었고 출석하는 것이 도리라고 발언했음에도 비상근 위원이 전원 불참했다"며 "오 전 위원장이 '출석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는데도 신 상임위원은 '알아서 하라'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것이 현재 선관위 태도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특위는 이날 오전 회의 내내 불출석한 인사를 고리로 선관위의 태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비상근 위원 중심으로 불출석이 이뤄지자, 고의적으로 출석을 방해한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터져 나왔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불출석한 증인 중 누군가가 자진 출석 의사가 있었는데도 선관위 누군가의 의사로 인해 불출석했다면 출석을 방해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거나, 오전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선관위 공무원이 있다면 특위 위원장 명의로 고발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기헌 민주당 의원도 "이들이 불출석한 것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본질이라고 본다"며 "선관위가 국민과 국회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선관위가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오민석·민소영 전 위원장은 오전 전체회의가 마무리되기 직전 오후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위 직무대행을 통해 전했다. 오후 전체회의에선 불출석한 인사 대부분이 참석한 상태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이유에 대한 질의가 집중됐다.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과 위 직무대행 등 선관위 전·현직 인사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지만, 막상 투표용지 부족 사태 책임론에 대한 추궁이 이어지자 권한은 하부 기관이 가지고 있다고 회피했다.
우선 노 전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위원회가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 직무대행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소중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큰 혼란과 불편을 겪으신 유권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위 직무대행은 "사무처와 독립된 감사관실을 통해 자체 특정감사에 착수하여 관계자 등에 대한 엄중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감사위원회 결정회의를 거쳐서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전·현직 선관위 인사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 당시 상황 파악과 조치가 이뤄졌는지 추궁이 이어지자 면피성 발언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노 전 위원장은 선관위가 이번 지선을 앞두고 본투표일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을 유권자수의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의 종합관리지침 변경을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한 것을 두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간소한 보고는 이뤄졌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개혁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허철훈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선거법상 투표용지는 시·구위원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관리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은 "50% 하한선만 결정을 해놨을 뿐이지 51%를 하든 55%를 하든 어떤 기준으로 하라고 이렇게 해놓은 것인가"라면서 "이렇게 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아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허 사무총장은 "인쇄 비율 하한 기준은 계속 축소돼 왔다"며 "하한부터 100%까지 인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결정한 부분이다. 중앙선관위에서 모두 (관리)하기는 어렵다. 선거법상 투표 용지 작성은 시·구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가 책임을 줄곧 회피하자, 여야에선 선관위를 대상으로한 개헌 필요성이 언급됐다. 특히 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견제 장치를 설치하는 내용에 대해 선관위조차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은 전체회의에 출석한 전·현직 선관위 인사들을 향해 "출석 요구서가 일주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법적 조항을 들어 출석하지 않았다"며 "그렇게 법을 잘 따지는 분들이 투표는 법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자기 권리에 대해 법 조문을 들어 출석하지 않을 정도로 잘 지킬 것이면 지방선거도 법적으로 관리·감독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선관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투명성을 위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를 헌법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출석한 분들은 어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위 권한대행을 비롯해 선관위 인사들을 한명씩 지목하며 개헌 동의 여부를 물었다. 지목된 인사들 대부분이 "공감한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의한다" 등 반응을 내놨다.
양 의원은 "선관위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며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