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의식 없는 평화는 ‘평화 팔이’
입력 2026.06.20 07:00
수정 2026.06.20 07:00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유럽·G7 순방 결과 브리핑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G7 순방에서 ‘평화 투어’가 이어졌다. 바티칸을 방문 중인 지난 14일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를 만들어 ‘평화 체제 구축’을, 15일 교황 면담에서는 자신의 평화 정책을 소개하고 지지를 구했다. 와중에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에 보낸 축사에서는 ‘평화 공존’을 강조했다.
‘국익’을 위해서란 국가 수반의 국제무대 활동에 ‘국익’의 관점에서 진한 아쉬움을 가진다.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어떤 자리, 누구에게도 확실히 하는 중국 지도자와의 확연한 대비 때문이다. 중국이 어떤 속셈을 가지고 있건 간에 국제사회의 대부분은, 역시 속셈은 어떻든 간에, 무력에 의하지 않는 현상 변경, 즉 중국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중국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재명도 평화와 더불어 말미에서라도 ‘하나의 코리아(One Korea)’에 대한 의지와 지지 호소를 함께 말해야 했다, 김정은이 남북은 적대적 두 국가요, 아예 다른 민족이요 뭐라 하건 간에. 그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한반도 평화는 필수다.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도, 평화 체제 구축이 싫다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정부가 ‘선 평화, 후 통일’을 구호로 세우고, ‘장기적이고 궁극적 목표로 통일’을 거론하는 상황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평화 공존’을 입에 올리는 마당에.
그런데 이들의 평화 방점이 점잖게 표현하면 ‘평화 마케팅’, 직언하면 ‘평화 팔이’가 될 수 있다. 평화 부재에 대해 책임지지 않거나 아예 책임 의식이 없다면. 그 평화를 위해 행한 북한 지도자와의 만남과 대화, 합의서나 성명서 발표 등에도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하지 않은, 북한 핵무장이 더 심화한 현실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그 과정에서 보여준, 유화책을 넘어 당해야 했던 갖은 수모에 부끄러움조차도 없다면.
문재인이 대표적이다. 평화 팔이로 임기 끝까지 권력을 즐기고, 퇴임 후에도 행복한 나날이다. 평화 부재에 대한 한 점의 반성이나 부끄러움, 책임 의식은 커녕 오히려 ‘혁혁한 성공’이었다 성과라 자랑하고, 여기에도 저기에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들은 사과·책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을 제기하는 이들을 오히려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평화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평화’고, 정치적 상대방은 ‘전쟁’이란 ‘도그마(Dogma: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로 국민을 현혹해 대선·총선·지선에서 승리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물려주는 것이 목표였을 수 있다.
‘평화의 실현’ 여부가 아니라, ‘평화란 상징’을 선점하고 점유하고 채색해 자신들의 이익을 획득·유지·확산하는 것이 목표였을 수 있다. 평화 부재는 상대 정치인·당의 책임으로 몰아붙이고, 전쟁 공포로 낙인찍어 국민의 마음과 정신을 홀린다.
이들은 ‘평화’, ‘민주주의’, ‘약자 보호’라는 반박하기 힘든 고결한 언어를 선점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반평화 세력’, ‘적폐’, ‘친일파’로 몰아세우며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려 한다.
이것들은 자신들의 잘못, 자질 부족, 심지어 범법 행위를 감추기 위한 위장막이자 기만술로 정치적 방패막이로 작동한다. 입으로는 평화와 민주주의, 정의와 도덕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삶은 온갖 특권과 반칙, 이름하여 내로남불로 얼룩진다.
이들은 부·권력·명예를 쌓은 ‘기득권 카르텔’이 되었다. 이들에게 평화 공존은 북한 주민의 고통이나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고민에서가 아니라, 현 상태를 유지하며 자신과 진영의 부·권력·명예를 공고히 하기 위한 실리적 수단일 수 있다. 내세우는 ‘현실주의’나 ‘실용주의’는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본질·속셈을 감춘 정치공학적 술수일 수 있다.
북한의 잇따른 합의 파기와 거침없는 핵무장이라는 명백한 ‘현실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정치적 정통성이 무너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기를 부리듯 평화 팔이에 더 매달린다. 북한은 남한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관계없이, 자신의 내부적 필요와 전략적 이익(핵무기 완성, 체제 유지, 내부 결속 등)에 따라 도발과 대화의 패를 번갈아 꺼내 들었을 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지난 15일 평양 화성지구 명당자리에 러시아에 파병됐다가 전사한 참전군인 유족을 위해 조성된 '새별거리'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16일 보도했다. ⓒ 뉴시스
평화를 기치로 유화 정책을 폈던 정권 시기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개발은 멈추지 않았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수조 원대의 현금과 물자가 들어가던 시절에도 북한은 지하에서 핵 개발을 지속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제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평화라는 가면은 체제 유지를 위한, 핵 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 수단이었을 뿐이다. 보수 정권의 압박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이 아니다.
대화 기조 속의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전후해 제1차 연평해전(1999년)과 제2차 연평해전(2002년)을 일으켰다. 문재인 때인 2020년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한의 태도와 무관하게 북한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는 증거들이다.
“보수 정부가 전쟁 위기를 높였다”, “보수 정부의 강경책이 도발을 불렀다”는 주장과 논리는 북한의 전략·전술을 간과하고, 상습적이고 의도적인 도발 행태를 미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왜곡된 단정이라는, 북한의 책임을 남남갈등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결코 옹호하는 것은 아님은 분명히 한다.
평화를 외치고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통일을 향한 나침반 바늘을 계속 켜두지 않는다면, 미래의 통일 대한민국을 어떻게 구상하고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실천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들의 ‘후 통일’ 구호도 통일 포기론자, ‘분단 부역자’라는 국민적 비판과 헌법 위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방어막으로 던지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처음의 문제 제기로 돌아가서 묻는다. 국내에서건 국제무대에서건 평화만 말하는 것은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가까워진다”를 믿기 때문인가. 통일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통일을 외치면 통일이 멀어진다”가 소신이기 때문인가. 평화는 반드시 와야 하고,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통일에서 완성된다. 평화에 대한 진정성은 평화에 대한 책임 의식에 있다.
평화 팔이의 본질에 국민이 눈을 떠야 한다. 그 국민이 다수가 되지 않는 한, 평화 장사는 계속된다. 오늘도 내일도. 6·25 전쟁 76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에서 친여 단체 주관의 평화장터가 대대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종전 선언, 항구적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평화 법안’ 통과 깃발이 올라간다. 당연히 통일은 없다. 문재인이 빠질 리 없고, 그때나 지금의 인물들이 얼굴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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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