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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아닌, 객석 맨 끝줄 관객으로”…분더비니의 관극 기록학 [기록하는 팬덤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6.19 14:01
수정 2026.06.19 14:01

공연 전문 리뷰어 분더비니 인터뷰

인스타툰부터 유튜브·블로그·에세이 출간까지

"미학적 평론 넘은, 덕후의 언어로 담은 작품에 대한 애정"

"객석에서 만난 선명한 세상 나누고 싶어"

“뮤지컬 ‘레베카’의 인물 ‘나(ich)’는 ‘난 알고 싶어,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이라고 노래합니다. 저 역시 공연을 보면서 새겨진 의미나 추억들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습니다. 어떻게든 기록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기억하기가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정과 생각도 조금씩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분더비니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재 중인 인스타툰 ⓒ분더비니 SNS

공연 리뷰어 분더비니에게 기록은 무대 위의 찰나를 삶의 영역에 붙잡아두는 병과 같다. 네이버 블로그로 시작해 인스타툰 연재, 유튜브 그리고 에세이 ‘맨 끝줄 관객’ 출간까지 기록의 반경을 넓혀온 그는 객석의 시선으로 공연 생태계를 기록하는 대표적인 관객이다.


분더비니에게 활자와 그림은 공연 예술을 소화하는 고유한 방식이다. 공연을 보고 나면 새로운 인사이트가 남거나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공연은 금방 소모되고 휘발되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새겨진 의미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활자와 그림이 좋아서 기록했다기보다는, 기록을 위해 활자와 그림을 도구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공연 중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거나, 언제든 쉽게 영상을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활자나 그림 기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됐고, 어쩌다 보니 그림까지 그리며 스펙트럼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초기 블로그에 적어 내려간 글은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사적인 아카이브였다. 그러나 채널이 커지면서 콘텐츠가 예상치 못한 곳까지 퍼지고, 조각난 형태로 재편집되거나 맥락이 오해받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작은 그림 일기장 같았던 기록을 단순히 사적으로만 다뤄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제 기록을 보게 될 수용자의 시선을 어느 정도 늘 고려하게 돼요. 진솔하고 솔직한 사적인 기록으로 출발했지만, 동시에 보다 친절한 기록이 되기 위해 그 안에서 나름의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강박이 되어 괴로움으로 돌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록해야 하는 작품과 하고 싶은 작품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며 에너지를 안배하기도 합니다.”


분더비니가 쓴 그림 에세이 '맨 끝줄 관객' ⓒ문학수첩

분더비니의 기록이 동료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는 비결은 비평의 언어에 있다. 학술적 평론이 작품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미학적 언어라면, 그의 기록은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덕후의 언어’다.


“어떤 대상에 깊게 집중하다 보면 사소한 손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작품이 보여주는 것 너머까지 상상하게 되죠. 그런 맥락에서 덕후의 언어는 때때로 미학적 언어에 비해 부담감 없이, 말도 안 되는 상상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평론적 언어들이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 도와주는 언어라면, 덕후의 언어는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앙상블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작은 디테일로도 향한다. 의도적인 주목은 아니었으나, 그는 무대라는 공간이 주인공만이 아니라 여러 참여자가 모여 함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의 군상’을 닮았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고 설명한다.


“무대란 주인공만이 아니라 여러 앙상블과 각 파트 스태프들이 모여 함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인데, 그게 꼭 사회의 군상 같아요. 사회는 결코 주인공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조명 바깥에 있는 저 너머의 생각과 몸짓들, 이름 없이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제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매듭을 풀어내고 싶을 때는 활자를 선택하고, 가볍고 유쾌한 만화적 상상을 덧대고 싶을 때는 그림을 활용한다. 활자의 기록이 사뭇 진지하다면, 그림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두 작품의 인물들을 서로 만나 대화하게 하거나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의 결말을 새로 쓰는 등 무대 너머의 상상을 펼치는 쪽이다.


분더비니는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면서도 끝내 창작자가 아닌 관객으로 남으려 한다. 아주 어릴 때는 배우나 작가를 꿈꾸며 연극을 공부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거나 문예창작과 진학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창작자로서 무언가를 만들 때보다 관객으로서 객석에 앉아 얻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공연 역시 배우와 연출, 글 쓰는 작가와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와 연주자들, 다양한 손길들이 모여야 해요. 그리고 그 중에서 중요한 존재 중 하나가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공연의 존재 의미도 사라질 테니까요. 살면서 해왔던 것들이 다 연결돼서 객석의 나로 이어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객석에서 제가 만난 선명한 세상을 열심히 보고 나누고 싶어요.”


분더비니와 뮤지컬 크리에이터 황조교가 함께 운영 중인 무의식 글쓰기 커뮤니티 '맥베쓰클럽' 회원들은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맥베쓰클럽SNS

그는 무의식 글쓰기 커뮤니티 ‘맥베쓰클럽’을 운영하며 관객들 간의 연대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 나이, 직업, 생활 반경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공연을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만나 서로의 관극 생활을 아끼고 응원하는 모습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동료가 같은 직장에서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같은 것을 함께 보는 관객이야말로 서로에게 우리는 매일 밤 극장에서 함께하는 동료니까요. 타인의 세계에 대해 경계 태세를 세우기 쉬운 외로운 시대에 그런 연결은 귀하고 소중하죠.”


“기록은 단순히 무언가를 남기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록을 통해 누구나 서로의 감상을 존중하고, 응원하고, 즐기며 향유할 수 있는 관객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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