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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은 50세, 연금은 65세부터?…청년, 명품·여행 대신 노후준비 [Now 2.30]

김하랑 기자 (rang@dailian.co.kr)
입력 2026.08.06 07:00
수정 2026.08.06 07:01

연금 고갈론에 '내 노후는 내가'

전문가 "불안만 키워선 안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월급 들어오자마자 개인형 퇴직연금(IRP)부터 넣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 고생하기 싫거든요."


3년차 직장인 A(27)씨는 월급날이면 가장 먼저 연금저축 계좌에 돈을 넣는다. 친구들이 해외여행과 명품 가방에 돈을 쓸 때 그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먼저 투자한다.


A씨는 매달 연금저축 30만원, IRP 20만원 등 총 50만원을 꾸준히 납입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은 노후자금은 약 1800만원이다. 그는 "은퇴 이후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60세 전후까지는 지금처럼 꾸준히 납입해야 한다"며 "평생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국민연금만으로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초년생 때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IRP는 퇴직금과 개인 납입금을 노후자금으로 운용하는 계좌로 일정 한도 내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ISA는 예·적금과 상장지수펀드(ETF), 펀드 등을 하나의 계좌에서 운용하면서 비과세·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세형 자산관리계좌다.


과거에는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주로 가입하던 상품이었지만, 최근에는 사회초년생들이 자산 형성과 노후 준비를 동시에 시작하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계좌로 자리 잡고 있다.


IRP와 ISA는 과거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주로 가입하던 상품이었지만, 최근에는 사회초년생들이 자산 형성과 노후 준비를 동시에 시작하는 대표적인 장기 투자계좌로 자리 잡고 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이처럼 '노후 준비는 은퇴 직전부터 하는 것'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사회초년생부터 연금계좌를 만드는 20·30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젊은 층의 연금 시장 유입 속도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말 연금저축 가입자는 764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5.8% 증가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연금저축에 대한 관심이 확산하면서 20세 미만 가입자는 같은 기간 53.4% 늘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투자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는 연금저축펀드도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연금저축펀드 계약은 2019년 94만건에서 2024년 430만건으로 약 4.6배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연금저축보험 계약은 482만건에서 411만9000건으로 줄었다. 보험 중심이던 개인연금 시장이 ETF와 펀드를 활용하는 투자형 계좌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IRP로 들어오는 자금도 늘고 있다. IRP 가입자는 2022년 300만4000명에서 2023년 321만5000명으로 7.0% 증가했다. ISA 가입자도 올해 1월 말 기준 807만명으로 제도 도입 이후 처음 800만명을 넘어섰다. 가입금액은 54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젊은 층의 연금 시장 유입 속도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투자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는 연금저축펀드도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데일리안 김하랑 기자

2030세대가 은퇴까지 수십 년을 남겨두고도 연금계좌를 만드는 배경에는 퇴직과 국민연금 수령 사이의 긴 소득 공백이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55~79세 고령층을 조사한 결과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둔 사람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였다. 현재 20·30대 대부분은 만 65세부터 국민연금을 받는다. 일자리 평균 퇴직 시점을 적용하면 월급이 끊긴 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약 12년의 공백이 발생한다.


정년까지 한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보장도 없다.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사업 부진과 조업 중단, 휴·폐업이 25.0%로 가장 많았고 건강 문제와 가족 돌봄 등이 뒤를 이었다. 노후 준비가 개인의 계획보다 노동시장 상황에 의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미다.


퇴직 이후 살아가야 할 기간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3.7년이다. 60세 남성은 이후 23.7년, 여성은 28.4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됐다.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뒤 30년 가까운 노후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국민연금 고갈론' 역시 청년층의 불안을 키웠다. 지난해 연금개혁과 최근 기금운용 실적을 반영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수정 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0년부터 연간 지출이 수입을 웃돌고, 적립 기금은 2069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기존 2065년 전망보다 4년 늦춰졌지만, 현재 20대가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할 시기와 맞물린다.


앞서 언급한 A씨처럼 20·30대가 현실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미래의 월급'을 미리 만들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자산 증식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생존을 위한 선택인 셈이다.


일자리 평균 퇴직 시점을 적용하면 월급이 끊긴 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 약 12년의 공백이 발생한다. ⓒ데일리안 김하랑 기자

직장인 B씨(32세)도 연말정산을 계기로 연금저축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계좌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본 뒤 매달 납입을 이어가고 있다.


B씨는 "예전에는 연금은 40대나 50대가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부모님 세대가 은퇴 뒤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계속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청년층이 목격한 현재 노년층의 현실도 노후 준비를 재촉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위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를 기준으로 집계한 한국의 66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은 40%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11년 48%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고령층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연금이 아니라 노후에 대한 불안이다. 복리 효과를 고려하면 일찍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소비와 자기계발, 주거 마련까지 미루게 한다면 현재의 삶이 희생될 수 있다.


사회초년생이 연금계좌에 자금을 과도하게 묶으면 실직이나 질병, 전세보증금 등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응하기 어렵고, 중도 해지 시 세제 혜택도 반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기본축으로 연금저축과 IRP를 활용하되, 비상자금과 노후자금을 분리하고 소득 증가에 맞춰 납입액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결국 청년들이 20대부터 노후를 걱정하는 현상은 금융 이해도가 높아진 결과인 동시에, 공적 안전망과 노동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는 신호다.


전문가들은 노후 준비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을 갖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자산 규모에 따라 2030세대의 자산 형성 출발선이 달라지고, 그만큼 자산을 불리는 속도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이럴수록 국민연금에만 의존하기보다 연금저축이나 IRP 등 사적연금을 활용해 꾸준히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불안감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며 "시간을 활용해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청년들이 20대부터 노후를 걱정하는 현상은 금융 이해도가 높아진 결과인 동시에, 공적 안전망과 노동시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는 신호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김하랑 기자 (rang@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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