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사건 2년 뒤 제출된 바지 DNA…대법 “무결성 입증해야”
입력 2026.06.14 10:40
수정 2026.06.14 10:40
1심 무죄·2심 '바지의 DNA'로 유죄→대법 "조작·훼손가능성 따져야" 파기환송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데일리안DB
성폭행 사건 발생 2년여 뒤 제출된 DNA 증거를 근거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은 DNA 감정 결과가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되려면 증거물이 사건 당시 상태 그대로 보존됐는지, 조작이나 훼손 가능성은 없는지까지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14일 연합뉴스와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8월 자신의 차량에서 B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을 해 간음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가 사건 당시 입었다는 바지에 대한 DNA 감정이 이뤄졌고, 그 결과 A씨의 DNA가 검출됐다. 2심은 바지 일부가 손상된 점도 피해자가 방어 과정에서 옷이 훼손됐다고 한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보고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문제의 바지는 사건 발생 2년 이상이 지난 2024년 1월 수사기관에 제출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동안 바지를 어떻게 보관했는지, 뒤늦게 제출한 경위는 무엇인지, 보관 과정에서 조작·훼손·오염 가능성은 없었는지에 대한 조사와 심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특히 바지에서 A씨와 B씨 외에 불상의 DNA가 함께 검출된 점도 대법원이 주목한 대목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사정에 비춰 바지가 사건 당시 상태 그대로 보존됐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추론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해 오류 가능성이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경우에만 사실인정에 상당한 정도의 구속력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사는 바지의 보관·제출 과정 등에 비춰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된다는 점에 대해 추가로 증명해야 하고, 원심도 이를 토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심리·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특히 그 증거방법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일수록 자칫 그 과학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인해 형사소송의 요체인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증명법칙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또 대법원은 항소심이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으려면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거나, 항소심에서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객관적 사유가 새롭게 드러난 경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