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 병목’ 뚫어…KAIST, 그린수소 생산 효율성 ‘세계 최고’ 선점[D:로그인]
입력 2026.06.01 07:00
수정 2026.06.01 07:00
촉매층 내부 물질 이동 통로 설계해
美 에너지부 올해 목표 넘는 성능 구현
값비싼 귀금속 사용량 크게 줄여
차세대 그린수소 상용화 가능성 제시
AI로 만든 2D 메조다공성 촉매층 기반 그린수소 생산 기술.ⓒKAIST
전 세계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대전환에 사활을 건 가운데 물을 전기분해해 청정 수소를 얻는 ‘수전해’ 기술이 미래 에너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수전해 기술은 각광받고 있긴 하나 난제가 존재한다. 수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가 전극 표면의 물질 이동 통로를 막아 효율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마치 꽉 막힌 도로에 고속도로를 뚫듯, 촉매층 내부의 미세 구조를 재설계해 기포를 효과적으로 배출하고, 그린수소 생산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차세대 친환경 수소 생산 상용화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화석연료 대체 최후 에너지원 ‘그린수소’…수전해 기포 난제
탄소 결합으로 유도된 Ru-C bond 및 촉매층 구조설계를 통한 세계최고 수준 음이온교환막 수전해 개발.ⓒKAIST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최후의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특히 수전해(AEMWE)는 낮은 귀금속 사용량과 높은 경제성을 바탕으로 차세대 친환경 수소 생산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알칼라인 수전해(AWE)와 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PEMWE)의 장점을 동시에 갖춰,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유망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고전류 구동 환경에서는 촉매층 내부에 발생하는 수많은 기포와 제한적인 물질 전달 특성으로 인해 반응 속도를 늦추고 물·이온·기체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 높은 과전압과 성능 저하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수전해 기술은 재생에너지로부터 친환경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지만, 실제 산업 환경처럼 높은 전류로 운전하면 촉매층 내부에서 물과 이온이 충분히 빠르게 이동하지 못하고 생성된 수소 기포가 쌓이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촉매층 내부서 물·기체 지나는 ‘길’ 설계…성능·안정성 동시 확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진우 교수 연구팀을 비롯한 김성준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연구팀, 이장용 건국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촉매층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연구팀은 연구 과정에서 결함(defect)을 도입한 2차원 메조다공성 탄소 기반 촉매층 구조를 개발해 촉매층 내부의 물질 전달 문제와 촉매 계면 안정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즉 기포가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물질 이동 고속도로’를 구축한 것이다.
또 결함이 도입된 탄소 표면에 루테늄(Ru) 나노클러스터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며 강한 Ru-C 결합을 형성했다.
이를 통해 수소 발생 반응(HER)의 반응 속도를 향상시키고, 장시간 구동 시 촉매 응집 및 성능 열화를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연구팀은 “기존에는 촉매 자체의 활성 향상에 집중했다면 이번 연구는 ‘촉매가 아무리 좋아도 반응물이 잘 들어오고 생성물이 잘 빠져나가지 못하면 실제 장치 성능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촉매 활성점과 촉매층 구조를 함께 설계해 반응 속도뿐 아니라 물질 전달과 기포 배출까지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전극 구조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낮은 귀금속 사용…수소 생산 세계 최고 수준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성능 지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수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포가 촉매층 내부에 쌓이지 않고 빠르게 배출됐으며, 고전류가 흐르는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반응이 유지됐다.
그 결과, 80℃ 환경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17.1 A cm⁻²의 성능을 기록해 미국 에너지부(DOE)가 제시한 올해 목표치를 크게 상회했다. 이는 단위 면적당 흐르는 전류량을 의미하는 수치로, 값이 높을수록 더 많은 수소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동시에 낮은 귀금속 사용량 조건에서도 1000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수전해 시스템의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연구의 핵심은 촉매 활성점 자체의 성능 향상뿐 아니라, 촉매층 내부의 물질 전달 구조까지 함께 설계해야 실제 수전해 시스템에서 높은 성능과 안정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규명한 것”이라며 “낮은 귀금속 사용량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 생산 성능과 장기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향후 대규모 친환경 수소 생산 시스템 설계를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수전해 시스템 구축 기여 기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최첨단 분석 기법을 동원했다. 집속이온빔(FIB)과 주사전자현미경(SEM)을 결합한 분석 장비로 촉매층 내부의 기공 구조, 물질 이동 경로를 3차원적으로 분석해 촉매층 내부에서 실제 물과 기체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규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기포의 거동을 확인해 장시간 구동 시에도 촉매가 응집되지 않고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설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이 선보인 기술의 응용 범위는 수전해에 그치지 않는다. 연료전지, 이산화탄소 전환 장치, 금속-공기전지 등 기체 발생이 수반되는 모든 전기화학 에너지 시스템에 적용 가능하다.
이번 성과는 그린수소 대량 생산을 위한 차세대 수전해 시스템 구축에 직접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진우 교수는 “연구는 촉매 자체뿐 아니라 에너지가 흐르는 길까지 함께 설계해 수전해 효율을 높인 기술”이라며 “적은 양의 귀금속만으로도 고효율 그린수소 생산이 가능해 향후 친환경 수소 생산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