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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적 래퍼 호소인들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 [D:이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24 06:48
수정 2026.05.24 06:48

'고 노무현 조롱' 래퍼 리치 이기 공연 취소...팔로알토 등도 사과

가사에 고인 모독 넘어 소아성애·아동성범죄 묘사도

"금기 건드리는 게 힙합"이라던 더콰이엇 발언도 주목

래퍼 리치 이기(Rich Iggy)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내용의 공연을 기획했다가 대중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며 공연을 취소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정치적 인물을 희화화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래퍼가 평소 가사에서 소아성애와 아동 성범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인륜을 저버린 내용을 지속적으로 담아왔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리치 이기 SNS

리치 이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5월 23일에 맞춰 공연을 기획하고 티켓 가격을 5만 2300원으로 책정했다. 이는 서거일 수치를 의도적으로 활용해 고인을 모독하려는 기획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리치 이기는 과거 발표한 여러 음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과 서거 방식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비판을 받아왔다. 일부 가사에는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 아동 대상 성범죄를 묘사하거나 연상시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논란도 이어졌다. 랩 네임인 ‘이기’ 역시 극우 커뮤니티에서 고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용어에서 유래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그의 정체성이 예술이 아닌 특정 혐오 정서에 기반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해당 공연에 팔로알토, 더콰이엇, 딥플로우, 염따 등 한국 힙합 씬을 상징하는 베테랑 래퍼들이 게스트로 참여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논란이 커지자 이들은 “공연의 구체적인 기획 의도를 몰랐다”며 사과했으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공연 날짜와 티켓 가격만으로도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혹여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해명이 아닌 또 다른 비판의 근거가 될 뿐이다. 후배 래퍼가 고인을 모독하고 소아성애 및 아동 성범죄적 정서를 가사에 담아오는 동안, 씬의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이 공연의 성격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이름을 빌려주었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이는 한국 힙합의 대부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지닌 도덕적 불감증과 무책임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료의 창작물이 지닌 반사회적 메시지에 눈을 감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무대에 서려 했던 행위는, 그 자체로 그들이 패륜적 가치관에 묵인하고 방조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더콰이엇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리치 이기를 언급하며 “일베 감성으로 노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한다든지,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지 이런 것에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을 느낀다”는 오메가 사피엔의 말에 “늘 금기를 건드리는 거다. 그게 힙합이고 젊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더콰이엇 ⓒSPNS TV

이들이 소아성애와 아동 성범죄를 묘사하는 가사를 방기하고 패륜적 공연의 무대에 함께 서려 했다는 점은 힙합계 전반에 퍼진 도덕적 불감증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증명한다. 노무현재단 측은 이번 사태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로 규정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포함한 전방위적 법적 대응을 공식화했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역시 최근 이 사태와 관련해 자신의 SNS에 “이따위 것을 나는 표현의 자유, 혹은 힙합의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런 래퍼를 핫한 신예랍시고 지지하고 함께 작업하는 베테랑 래퍼들이라니. 한국 힙합 정말 슬프다. 한국 래퍼들 진짜 힙합을 사랑하긴 하냐”라고 일갈했다. 또 그는 “리치 이기의 음악을 놓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힙찔이들은 그냥 이 판에서 자진 강퇴하라. 그게 한국 힙합, 나아가 한국 대중예술을 위한 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힙합 씬은 오랫동안 ‘문화적 특수성’이라는 수식어를 방패 삼아 수많은 혐오와 비하를 정당화해 왔다. 힙합의 본질인 저항 정신은 사라지고, 사회적 약자나 고인을 공격하며 얻는 자극적인 관심을 예술로 착각하는 구조적 결함이 고착화된 결과다. 금기를 깨는 행위는 권력과 부조리를 향할 때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인류 보편의 가치와 도덕적 저지선을 파괴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고귀한 가치이나, 그것이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거나 범죄를 미화할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동 성범죄와 같은 반인륜적 정서를 공유하는 창작자에게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는 고귀한 수식어는 사치에 가깝다. 이러한 행태를 방조해온 힙합 씬 내부의 관행 역시, 사실상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사회 보편의 윤리와 공존하지 못하는 장르는 결국 대중에게 외면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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