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장벽 넘어 상상력으로 하나 될 것”…한강 등 아비뇽 가는 韓동시대 예술 [D:현장]
입력 2026.05.22 08:12
수정 2026.05.22 08:12
한국어 기반의 동시대 공연예술이 아시아 언어권 최초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된 가운데, 국내 공연예술 9개 작품이 축제의 핵심 무대인 공식 초청 프로그램(IN)에 오르며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코리아랩 AKL아고라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은 올해로 제80회를 맞이하며, 2026년 축제의 공식 초청 언어(Guest Language)로 ‘한국어’를 선정했다. 이는 아시아 언어권 최초이자 단일 국가 언어로는 유일한 사례로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적 위상을 증명하는 성과다. 특히 축제 측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작품만이 오르는 ‘공식 초청 프로그램(IN)’에 한국 작품이 다수 선정된 것은 1998년 이후 약 28년 만이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연극, 현대무용, 전통, 유희, 그리고 다원예술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한국 공연예술의 폭넓은 스펙트럼이 세계 무대에 소개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단발적인 해외 공연 지원을 넘어 한국 예술가와 해외 예술가 간의 협력, 그리고 해외 공연장·축제와의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교류와 유통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을 대표해 참석한 피에르 모르쿠스 문화참사관(이현주 대독) 역시 프랑스-한국 수교 140주년 기념을 겸한 이번 프로그램에 큰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한 것은 한국어가 지닌 시적인 힘은 물론 동시대 한국 연극의 역동성, 창의성, 다양성에 대한 의미”라며 “협력이 상호 교류로 이어져 티아고 호드리게즈 예술감독의 작품을 포함한 프랑스 작품 4편이 차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 해녀의 물질에서 출발해 노동과 생존의 감각을 다루는 연극 ‘물질’의 이진엽 연출은 초청 이후 해외 기획자들의 관심이 이어져 무대가 가진 의미와 무게를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연출은 “관객이 단순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 안에서 직접 마주하고 감각하게 될 것”이라며 “프랑스 현지에서 모집한 난민 커뮤니티 분들과 일주일간의 워크숍 소통을 거쳐 함께 무대를 올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아래에서 진행된 제주 4·3 관련 유해 발굴 과정과 유족들의 구술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 ‘섬 이야기’의 이경성 연출은 “지난 70년 동안 우리의 공동체가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것을 견디고 살아내며 이뤄낸 회복의 저력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당시 제주어가 달라 학살이 잔혹했다는 증언이 있어 제주어를 표준어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들어갔다”며 “관객들이 번역된 자막으로 보더라도 널리 공감할 수 있게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레오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을 재해석한 창작 판소리 ‘눈, 눈, 눈’을 선보이는 이자람 소리꾼은 무대 위에 소리꾼과 고수 단 두 명만이 참여하는 강렬한 무대를 예고했다. 이자람은 “과거 오프(OFF)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 밤마다 교황청 담벼락에 앉아 공식 초청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질문했었는데 꿈만 같고 기쁘다”며 “판소리는 관객의 상상력이 소리꾼의 상상력과 함께 힘을 쓰는 장르인 만큼, 아비뇽 오페라 극장에서 어떠한 그림들이 관객 개개인에게 남을지 매우 기대된다”고 전했다.
전통 연희자와 현대 무용수가 악기를 덜어내고 몸의 DNA로 충돌하는 실험적 작품인 ‘긴: 연희해체프로젝트 I’의 이인보 연출은 “완벽하게 완성된 전통 예술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여지를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며 “우리가 하고 있는 질문들이 프랑스 및 세계적인 관객들에게 어떻게 공유되고 유효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기후 변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걷는 패턴의 변화를 통한 도시화된 몸의 과정으로 풀어낸 현대무용 ‘1도씨’의 허성임 안무가는 “10살 된 아들이 기후 온난화를 걱정하며 ‘우리는 조금 더 걸어야 해요’라고 말한 작은 행동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인간의 몸이 자연의 몸에서 다시 산업화와 도시화된 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구자하 연출의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가 화상 참여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한강 작가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 – 새’ 등이 축제 기간 동안 아비뇽 전역의 주요 무대에서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자람 소리꾼은 프랑스에서 수 차례 공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객의 시선은 자막 대신 제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의 상상력이 만나는 순간부터는 자막의 도움을 가볍게 받으면서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셈”이라며 “아비뇽에서도 관객들과 깊은 교감을 이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언어 장벽을 뛰어넘는 무대의 힘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