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뭐 먹을까? 뇌 아닌 ‘장(腸)’이 선택한다
입력 2026.05.22 03:02
수정 2026.05.22 03:02
IBS, 장-뇌 축 작동 원리 밝혀
부족한 영양소 선택적으로 섭취 유도
단백질 부족하면 장이 뇌 설득
초파리·생쥐서 동일 메커니즘 검증
음식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몸속 장(腸)이 단백질 부족 상태를 감지한 뒤 뇌에 신호를 보내 특정 영양소를 선택적으로 먹도록 유도하는 장-뇌 축(gut-brain axis) 작동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규명했다. 장이 단순 소화기관을 넘어 영양 상태를 판단하고 식이 행동까지 조절한다는 점을 입증한 연구다. 비만·대사질환 치료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마이크로바이옴-체-뇌 생리학 연구단 서성배 단장 연구팀이 서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연구진과 단백질 결핍 상황에서 장이 뇌 신경회로를 변화시켜 필수아미노산을 우선 섭취하게 만드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22일 오전 3시(한국시간) 온라인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 개인기초연구사업(리더연구), IBS 기초과학연구단사업,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등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진은 장-뇌 축이 단일 경로가 아니라 ‘빠른 신경 회로’와 ‘느린 호르몬 경로’가 동시에 작동하는 정밀 시스템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장 상피세포는 단백질 부족 신호를 감지하면 먼저 장-뇌 신경 경로를 통해 뇌에 빠르게 신호를 보내 필수아미노산 섭취를 유도했다.
이후 장에서 분비된 CNMa 펩타이드 호르몬은 혈액순환을 통해 느리게 뇌에 도달해 단백질 선호 행동을 장시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빠른 신경 반응과 느린 호르몬 반응이 서로 협력해 영양 결핍 상황에 대응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앞서 2021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를 통해 초파리가 단백질 결핍 상태에 놓이면 장에서 CNMa 호르몬이 분비돼 단백질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해당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경로와 작동 원리를 추가로 규명했다.
특히 연구진은 CNMa 신호가 뇌 속 특정 뉴런인 ‘EB R3m 뉴런’을 활성화해 필수아미노산 섭취 행동을 증가시키고, 반대로 탄수화물 섭취를 촉진하는 DH44 뉴런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단순히 전체 식사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영양소를 선택적으로 섭취하도록 식단을 재조정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장에서 뇌로 직접 연결되는 빠른 콜린성(cholinergic) 기반 신경 회로도 새롭게 발견했다. CNMaR을 발현하는 장 뉴런이 아세틸콜린을 이용해 단백질 부족 신호를 뇌로 즉각 전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초파리뿐 아니라 생쥐에서도 동일한 장-뇌 축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생쥐 역시 단백질 부족 상황에서 필수아미노산을 우선적으로 섭취하는 행동을 보였다. 기존 핵심 호르몬으로 알려진 FGF21이 결핍된 상태에서도 같은 반응이 유지됐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기존 FGF21 중심 경로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장-뇌 조절 시스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장-뇌 축 기반 치료 전략 개발과 비만·대사질환·영양 불균형 관련 후속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현재 비만 치료제에 활용되는 GLP-1 계열 호르몬 역시 직접적인 장-뇌 신경 경로를 통해 작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서성배 IBS 연구단장은 “비만·식욕 조절 약물 대부분은 장 호르몬 신호를 활용하지만 자연 분비 장 호르몬이 뇌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경로는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다”며 “이번 연구는 장-뇌의 영양소 선택 원리를 밝힌 것으로 향후 비만·대사질환·식이 행동 장애 치료 연구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새로운 생명 현상 규명 등 기초연구 성과는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단단한 뿌리”라며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창적·혁신적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 구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