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 하우스 대신 테크노 택한 하이브 걸그룹…새로움과 피로감 사이 [D:가요 뷰]
입력 2026.05.17 13:59
수정 2026.05.17 13:59
“처음엔 낯설지만 중독적” 반응 속 비슷한 질감·피로도 누적 지적도
하이브 산하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 아일릿(ILLIT), 캣츠아이(KATSEYE)가 이미 검증된 ‘아는 맛’ 하우스 장르대신 더 빠르고 강렬한 테크노 비트를 들고 나란히 컴백했다. 케이팝(K-POP)에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비슷한 시기 유사한 질감의 사운드를 내세우면서 피로감과 색깔 중복에 대한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아일릿 ⓒ빌리프랩(하이브)
15일 가요계에 따르면 최근 케이팝 시장에서는 하우스 장르가 대중 친화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반복적인 리듬과 세련된 클럽 사운드를 갖추면서도 멜로디와 보컬 라인을 크게 해치지 않아 리스너들이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팀 색깔을 드러내는 주요 선택지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키키(KiiKii)가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404 (New Era)’를 통해 UK 하우스와 개러지 기반의 빠른 템포를 앞세워 데뷔 초 모호했던 이미지를 걷어냈다. 이밖에도 하츠투하츠(Hearts2hearts) ‘포커스’(FOCUS), 라이즈(RIIZE) ‘임파서블’(Impossibe), 뉴진스 ‘디토’(Ditto) 등의 하우스 장르 기반 곡들은 그룹의 커리어 하이와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노래로 손꼽힌다.
이와 달리 르세라핌, 아일릿, 캣츠아이는 테크노 기반의 곡을 통해 더 강한 변화를 시도했다. 캣츠아이는 지난해 ‘날리’(Gnarly)를 통해 이미 강한 전자음악 계열의 사운드를 선보인 바 있어 이번 흐름이 기존 방향성의 연장선에 가깝다. 반면 르세라핌과 아일릿은 기존 팀 이미지에서 한 발 더 강한 사운드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변화의 폭이 더 크다.
테크노는 하우스보다 킥이 강하고 속도감과 반복성이 두드러지는 장르다. 멜로디보다 비트의 질감과 에너지에 방점이 찍히는 만큼 퍼포먼스와 숏폼 콘텐츠에는 유리하다. 실제로 세 팀의 신곡은 초반 호불호에도 성적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였고 “처음엔 낯설었지만 들을수록 중독된다”는 반응도 얻고 있다.
각 소속사는 이 같은 장르 선택이 유행을 좇은 결과가 아니라 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쏘스뮤직은 르세라핌이 정규 활동 전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을 리드싱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장르를 선택할 때는 항상 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먼저 고려한다. 곡의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를 1순위에 놓고 검토했고,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이디엠(EDM)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두려움을 인정하고 이를 마주할 내면의 힘을 갖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강렬한 비트, 댄서블한 에너지를 가진 이디엠을 만났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발휘된다”며 “퍼포먼스와 결합했을 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노래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빌리프랩 역시 아일릿의 ‘잇츠 미’(It’s Me)에 대해 “아일릿의 음악은 앨범마다 뚜렷한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캐릭터가 명확하게 담겨 있다”며 “이번 타이틀곡에서의 아일릿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내가 네 최애라고 말해’라고 외치고 있고, 이러한 캐릭터를 잘 묘사해준 이디엠·테크노 장르의 곡이 ‘잇츠 미’로 탄생했다”고 밝혔다.
다만 빌리프랩은 기존 콘셉트에서 의도적으로 강렬한 변신을 시도했다기보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잇츠 미’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아일릿의 음악적 스펙트럼도 한층 넓어졌다고 전했다.
르세라핌 ⓒ쏘스뮤직
문제는 이 새로움이 각 팀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했느냐는 점이다. 르세라핌은 강한 퍼포먼스와 자기 확신의 이미지를, 아일릿은 몽환적이고 엉뚱한 소녀의 매력을, 캣츠아이는 글로벌 팝 걸그룹의 감각을 각각 내세워왔다. 출발점이 다른 팀들이지만 최근 곡에서는 빠른 비피엠(BPM), 강한 전자음, 클럽 사운드라는 비슷한 질감으로 수렴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하이브 산하 걸그룹들의 테크노 장르 시도에 대해 “요즘 트렌드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고, 걸그룹의 음악과 안무, 댄스와도 어느 정도 맞기 때문에 시도하는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건 사운드의 색깔이 아니라 곡 퀄리티다. 곡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르세라핌의 최근 음악 변화에 대해서는 “대중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음악이 더 쉽고 친밀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라면서도 “그 때문에 더 비판받을 수도 있다. 대중성을 강조하는 건 좋지만 곡 퀄리티가 떨어지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테크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케이팝이 하우스, UK 개러지, 저지 클럽 등 다양한 클럽 기반 장르를 흡수해온 흐름 안에서 테크노 역시 충분히 확장 가능한 선택지다. 다만 하우스가 멜로디와 리듬의 균형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했다면, 테크노는 강한 반복성과 밀도 높은 비트로 인해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여러 팀이 비슷한 시기 비슷한 방식으로 이 장르를 사용할 경우, 장르적 신선함은 빠르게 익숙함으로 바뀐다.
따라서 새롭고 자극적인 사운드가 일회성 실험에 그칠지, 아니면 팀 정체성을 확장하는 장르적 전환점이 될지는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성에 달려 있다. 임 평론가는 “모든 음악적 사운드에 대한 시도는 자기들만의 개성을 가지려는 몸부림으로 보이지만, 아직 음악적으로 견고함을 구축하지는 못했다”며 “확실한 무언가를 내걸고 대중과 호흡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