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과 '공소취소 특검법'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6.05.11 11:08
수정 2026.05.11 13:24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원칙 예외인 드라마 속 왕족
공소취소 특검법, 21세기 왕족 만들 생각인가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변우석, 아이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요즘 변우석, 아이유 주연의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화제입니다. 21세기, 즉 현 시점까지 한국에서 입헌군주제와 왕족·양반·평민의 신분제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배경으로 합니다.
아예 얼토당토않은 판타지의 세계는 아닙니다. 지금도 영국 등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처럼 왕과 왕족이 존재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왕이 독점했던 권력을 국민이 가져오는 과정에서 왕을 단두대에 세우는 난폭한 방식 대신, ‘협박’은 있을지언정 ‘유혈사태’는 최소화하며 왕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한 국가들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민주권’ 체제에서 통치권을 내려놓은 왕은 시간이 갈수록 전통적인 전제군주에게 주어졌던 특권과 예우마저 하나둘씩 내놓게 됩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적용되는 시대에 왕이라고 예외를 적용받는 부분이 너무 많으면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존재 자체를 위협당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다 보니 지금의 왕들은 일종의 ‘고품격 럭셔리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입니다.
왕이 존재하는 국가별 역사적 배경에 따라 왕과 왕족들이 가진 특권에는 차이가 있지만, 21세기 대군부인에서의 설정은 왕족이 통상적인 사법절차에서 예외 적용을 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왕(드라마상에서는 왕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섭정)이 승인하지 않는 한 왕족은 어떤 범죄 혐의가 있다 해도 수사를 받지 않고, 기소와 공소 대상도 되지 않는 겁니다. 임기 중에만 불소추 특권을 지니는 대통령과 달리, 왕족은 임기가 없으니 영구적으로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이 때문인지 왕족과 왕실 외척이 암살을 시도하고 불을 지르는 일을 벌여도 경찰과 검찰은 코빼기도 안 비칩니다. 심지어 섭정의 명으로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실질적인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가 왕실보호국의 협조 하에 직접 수사를 진행합니다. 여주인공을 향한 사적 감정과 모종의 정치적 거래로 총리가 수사 결과를 묻어버리는 일도 그래서 가능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21세기 대군부인의 세계관과 같은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다면, 아마도 왕실과 국민들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이 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왕실 운영비와 왕족 의전비로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것도 불만인 사람들이 많겠지만, 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수사를 받지 않는 데 분노버튼이 눌릴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왕실의 권위를 국가의 권위와 동일시하며 웬만한 사건은 묻고 넘어가는 게 익숙했던 국민들이라면 모를까,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누려온 우리 국민들이라면 절대 용납 못 할 일입니다.
그런데, 최근 범죄 혐의가 있는 자도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기만 하면 평생 법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여당이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법’은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재판 중인 사건들을 특검이 강제 이첩받아 공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공소취소 특검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특검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특검법을 의결해 구성할 수 있습니다. 특검 임명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합니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이재명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면 ‘재판 중인 사건의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특검이 출범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이 법안이 ‘이재명 대통령을 대상으로 이뤄진 기소가 조작됐다’는 전제 하에 추진됐다는 겁니다. 실제 기소가 조작됐는지 여부는 제가 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기소 대상자가 특검을 임명해 자신에 대한 공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소취소 특검법을 놓고 시끌시끌해지자 민주당은 법안 처리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법안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죠.
공소취소 특검법이 지방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자각한 걸 보면, 이 법안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걸 민주당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철회’가 아닌 ‘연기’라고 합니다. 선거 때만 잠시 접어뒀다가 선거가 끝나면 기어코 국민 의사를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임기 후에도 재판받지 않을 안전장치를 마련해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겁니다.
과연 우리는 몇 달 뒤에 자신에 대한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절대권력자가 다스리는 나라에 살게 될까요.
특정 집단으로부터 ‘절대존엄’으로 숭배 받는 존재라 할지라도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에서 예외를 적용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보고 넘길 수 있는 드라마지만, 공소취소 특검법은 보고 넘겨서는 안 될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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