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를 국산화한다는 상상 [데스크 칼럼]
입력 2026.05.06 11:21
수정 2026.05.06 11:37
마징가를 부러워하던 나라…이젠 로봇의 가슴에 어떤 로고를 새길 것인가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 1970년대 말, 흙먼지 날리는 골목길의 지배자는 단연 브라운관 너머의 강철 로봇들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약속이나 한 듯 '마징가Z' 주제가를 떼창했고, 출처조차 불분명한 조악한 완구를 손에 쥔 채 골목대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육박전을 벌였다.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의 시선은 태평양 너머, 할리우드의 거대한 은막으로 향했다. 인공지능(AI)를 갖춘 '로보캅'과 '터미네이터', 형태를 자유자재로 뒤바꾸는 '트랜스포머'와 '아이언맨'. 스크린 앞 아이들의 얼굴은 이 로봇들의 스펙타클에 상기됐지만, 과거 그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이 사실 대한해협 건너 일본의 창작물이었음을 뒤늦게 안 기성세대의 반응은 냉소에 가까웠다. "우리 것도 아닌데…"라는 짙은 패배감. 이처럼 로봇은 언제나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남의 나라가 독점한 눈부신 신기루에 불과했다.
▲ 이렇게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이 견고한 체념에 균열을 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장의 AI 생성 이미지다.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 묵직한 흙빛 장갑을 두르고 묵묵히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신장 2.1m, 중량 185㎏, 작전 지속 시간 48시간의 강철 파수꾼. 두뇌는 LG AI연구원의 언어모델, 눈은 LG이노텍의 비전 센싱과 라이다, 피부는 LG디스플레이의 올레드(OLED)로 덮여 있고 심장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근육은 LG전자의 구동 플랫폼이 책임진 휴머노이드.
물론 LG가 이 이미지 속 로봇을 실제로 만들지는 모른다. 킬러로봇 논쟁, 인간의 최종 통제권, 군사 AI 윤리, 해킹 방어, 오작동 책임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그러나 이 이미지가 시선을 붙잡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미 휴머노이드의 부품들을 대부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젠 우리 기업인 삼성도, 현대차도, 한화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로봇과 방산 그리고 AI를 엮을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이 도발적 이미지가 공상으로 휘발되느냐, 산업 전략이 되느냐다. "우리가 저걸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어야 연구개발도, 투자도, 정책도 따라온다. 실제 미래 전장의 병사는 총을 든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산업 현장에선 센서와 배터리, AI를 탑재 한 로봇도 함께 설 것이다.
그때 그 로봇의 가슴에 어느 나라, 어떤 기업의 로고가 붙을 것인가. 어느 기업이 먼저 '부품 회사'를 넘어 '시스템 회사'가 될 것인가. 배터리·센서·모터만 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한 몸으로 묶어 세계가 사갈 플랫폼을 만들 것인가. 이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