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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 다른 나, ‘지킬앤하이드’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 [D:헬로스테이지]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26 14:21
수정 2026.04.26 14:21

6월 7일까지 대학로 링크더스페이스

심연을 들여다본 자가 마주한 것은 괴물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연극 ‘지킬 앤 하이드’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는 인간의 본성을 향해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추악함을 목격하며 느끼는 쾌락과 공포, 그 양가적 감정의 끝에서 우리는 거울 속에 숨겨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주)글림아티스트

지난해 초연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연극 ‘지킬 앤 하이드’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재연은 공연장을 대학로 링크더스페이스로 옮기며 공간의 변화를 주었고, 출연진 또한 전면 교체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수혈했다. 게리 맥네어의 각본을 바탕으로 이준우 연출이 빚어낸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아는 뮤지컬 버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화려한 넘버나 로맨스를 걷어낸 자리에는 1인극이라는 형식이 주는 긴장감과 철학적 사유만 남았다.


극의 중심축은 지킬도, 하이드도 아닌 변호사 가브리엘 어터슨이다. 어터슨은 친구 지킬의 기이한 행적을 쫓는 추적자이자, 하이드라는 악의 실체를 대면하는 목격자다. 관객은 어터슨의 고백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전도가 발생한다. 지킬의 위선을 비난하던 어터슨의 시선은 어느덧 관객의 시선과 합치되며, 타인의 악을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성을 확인받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하이드는 지킬이 만들어낸 약물이 아닌, 사회적 가면 뒤에 숨어있던 어터슨과 우리 모두의 그림자임을 극은 증명한다.


이번 시즌 어터슨 역으로 합류한 배우 배수빈은 85분간 홀로 무대를 책임지며 15명의 인물을 형상화한다. 화려한 분장이나 소품의 도움 없이 오직 목소리의 톤과 신체의 변주만으로 공간과 인물을 창조한다. 특히 하이드로 변모하거나 그를 목격했을 때 보여주는 배수빈의 신체 연기가 압권이다. 눈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뒤틀린 자세는 인간 내면에서 분출되는 통제 불가능한 욕망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베테랑 배우로서 그가 유지하는 감정의 절제는 역설적으로 인물이 처한 파국을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같은 역을 정동화와 정욱진, 차정우가 나눠 연기하고 있다.


연출은 무대 위의 모든 요소를 최소화했다. 텅 빈 무대와 몇 개의 조명, 그리고 정교하게 배치된 음향은 배우의 독백이 가진 힘을 극대화한다. 조명은 인물의 심리에 따라 날카로운 선을 그리거나 공간을 어둠으로 잠식하며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실체화한다. 무대 위의 ‘비어 있음’은 곧 관객의 상상력이 채워질 공간이 된다. 연출은 관객을 단순한 관람객에 머물게 하지 않고, 어터슨의 고백을 듣는 배심원이자 공범자로 극 안에 끌어들인다.


공연의 막이 내릴 때, 관객은 지킬의 죽음이 아닌 하이드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하이드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발길을 무겁게 한다. 이번 재연은 초연이 다진 형식미를 계승하면서도, 배수빈이라는 배우를 통해 인물의 심리적 층위를 한층 더 깊게 파고들었다. 인간의 이면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이 작품은 고전의 생명력이 변주를 통해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연은 6월 7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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