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안 개구리 한국
입력 2026.04.17 08:10
수정 2026.04.17 08:11
지난달 3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해안에 유조선들이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랜만에 본 BBC, CNN
이란 전쟁을 계기로 근 10여 년 만에 CNN과 BBC월드를 시청했다. 현역 시절 자주 보던 얼굴들이 많이 바뀌었다. 일본 쓰나미 때 장편 서사시같은 그랜드 오프닝을 토하던 다이앤 소여는 은퇴하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의 중동 전문기자 CNN의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의 얼굴이 보여 반가웠다.
아만푸어는 나이가 들어서 추위를 타는지 화려한 외투 안에 구스다운 패딩을 껴입고 방송에 출연했다. 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아만푸어는 이란계 미국인으로 중동을 보도할 때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져 생생한 전쟁 분위기를 전한 전설적인 언론인이다.
이미 60이 훨씬 넘었을 텐데도 젊은이들처럼 현장을 뛰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CNN의 아만푸어가 아직은 외모도 아직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반해, BBC의 현장 기자들은 너무 나이들어 보여서 BBC의 모국인 영국의 이미지까지 늙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오랜만에 영어 방송을 들으니 영어가 귀에 설어 처음에는 거의 전적으로 자막에 의존해야 했다. 자막 읽기도 옛날과는 달라 채 모두 읽기도 전에 다음 자막으로 바뀌는 일이 잦았다. 이삼일 지나면서 자막 읽기도 익숙해졌고 일주일쯤 지나서야 모두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화 내용을 짐작할 정도로 따라잡았다.
사실 처음 일주일 동안의 전황은 대부분 예상했던 것들이라 읽고 듣는 게 쉽기도 했다. 어쨌든 7주째 접어드는 이란 전쟁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부의 정보력 부재와 우리 언론의 빈약한 국제 네트워크가 아쉬웠다. 우물안 개구리는 당정청만이 아니었다. 야당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고 언론도, 학계도 비슷하다.
해외 방송의 폭넓은 출연진
결국 같은 말일 수도 있겠는데 CNN·BBC월드 출연진은 전 세계에 걸쳐 있었고 전 분야에 걸쳐 있었다. 쉽게 말해 이란 측 입장은 이란 정부 관계자가, 미국 입장은 미국 정부 관계자가, 유럽 국가 입장은 EU나 NATO 등 유럽 국가의 지도자가 출연해 설명하고 있었다.
유가는 석유 전문가, 증시는 투자전문가, 군사나 무기는 군사 전문가 식으로 분야별로도 전문가가 동원됐다. 그런데 우리 방송은 그 나라 언어 공부한 국내 교수가 전문가라며 출연해 정치, 경제, 유가, 전쟁을 모두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문가 풀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점에서 부끄러웠다. 이렇게 국가도 언론도 국제 인맥이 빈약해서야 언필칭 세계 6위 강대국이라 떠들 자격이 있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우리 바로 옆 일본에 대한 전문가조차 동원할 능력 없는 우물안 대한민국이었다.
요즘 후배 언론인들이 영어는 우리 때보다 확실히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 같다. 외국인 기피증도 없이 당당하다. 그러나 그들의 국제 문제에 관한 이해도 수준도 그만큼 높은지는 의문이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정세에 중요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얼마나 공부가 돼 있는지도 궁금하다.
AI 시대에 다시 떠오르는 인도 전문가는 있는지, 이번에 중요성이 다시 부각된 중동 전문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러시아 전문가는 있는지.
이번에 현지에 투입된 한국 취재진 가운데 이란어(페르샤어)를 구사하는 기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됐는지, 아랍어를 구사하는 기자가 몇 명이나 됐는지도 궁금하다. 올여름 월드컵은 영어권뿐 아니라 스페인어권에서도 함께 열리는데 현지어를 구사하는 취재팀이 구성될 정도로 인재풀이 넉넉한지.
한국 정부의 편협한 네트워크
조현 외무부장관이 이란전쟁 발발 24일째인 3월 23일 이란 아라그치 외무장관과 처음으로 통화하고 한국행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보도에 따르면 조현 장관은 “최근 중동 상황이 역내를 넘어 글로벌 안보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란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보도를 보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정부와 나라 전체의 빈약한 해외 네트워크다.
이란 전쟁이 발생한 사실은 워낙 극비라 미국이나 이스라엘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 치자. 그러나 전쟁 발발 24일이나 돼서야 전쟁 당사국 고위 관계자와 처음 통화했다는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청와대 안보실이나 정부, 국회에는 뭐하는 사람들이 앉아 세금을 축내는 것인가? 대통령,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정원장, 안보실장, 정책실장, 국회의장, 외교. 재무장관, 한은 총재 등등 얼마나 잘나고 권력 자랑하는 자들이 많은데 미국, 이스라엘, 이란 세 나라 최고위 관계자와 20일 넘도록 전화 통화 한 번 못하나?
각자는 각자의 카운터파트가 있을 것이고, 카운터파트가 아니더라도 해외 인맥이 그렇게도 없는가? 그러면서 우물안 개구리끼리 모여 ‘비상대책회의’ 운운하는가? 바쁘고 정신없는 기업인들 모아서 기업의 해외 지사 닦달해 자투리 정보 모을 궁리만 하는가?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유럽연합은 우리보다 훨씬 인구도 많고 GDP 규모도 크고 다언어를 쓰는 큰 기구다. 그 유럽연합의 장관급 회의 즉 집행위원회 회의장보다 우리 국무회의장이 훨씬 더 크고 권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언필칭 대한민국 국무회의의 정보력과 인맥은 EU의 정보력과 인맥에 훨씬 못 미친다.
지금까지 긴박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트럼프가 어떤 생각하는지, 트럼프의 측근들은 어떤 고민하는지 핫라인 가진 사람이 절대 필요하다. 이스라엘에도 필요하고 이란에도 필요하다. EU는 그런 인맥을 갖고 준비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 국무회의는 그런 인맥이나 정보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독자적인 정보망이나 인맥이 없으면 언론보도라도 잘 모니터해야 한다. 해외 언론 모니터할 실력 안 되면 국내 언론 보도라도 잘 모니터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2월 24일 데일리안에 ‘개전일자는 26일 또는 27일’이라고 예측한 칼럼을, 3월 14일에는 ‘이란 최고지도자의 시신 정치’라는 제목으로 모즈타바의 생존 여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후 24일에는 ‘이란의 치명적 실수 또는 항복할 결심’을 게재했다. 일련의 칼럼 모두 전쟁 당사자를 파악하고 흐름을 미리 예측한 칼럼이다. 보도 내용을 잘 모니터 했다면, 정부는 더 효과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제라도 소프트파워를 제대로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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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