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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연대 사이…12·3 내란을 기록하는 다큐의 시선 [D: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4.15 08:46
수정 2026.04.15 08:50

기록 넘어선 다큐의 접근 변화

곧 공개를 앞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다큐멘터리인 ‘란 12.3’과 ‘남태령’이 동일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시선과 문법에서 각기 다른 접근을 취해, 관객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관심을 모은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정국은 급격히 요동쳤다. 국회와 시민사회의 즉각적인 대응 속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며 사태는 해제 국면으로 전환됐지만,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이 사건은 정치적 파장을 넘어 사회 전반에 강한 충격을 남겼다.


‘란 12.3’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의 상황을 바탕으로, 그날 밤을 관통한 긴박한 시간과 감각을 재구성한 이명세 감독의 시네마틱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헬기가 제때 이륙했다면, 군 병력이 한강을 건넜다면, 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면 등 단 하나의 변수만 달라졌어도 결과가 뒤바뀔 수 있었던 상황을 환기시키며, 당시의 불안과 긴장을 다시 호출한다. 이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는 점에서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결과보다 그 순간을 통과한 사람들의 행동에 주목한다. 위기 속에서 각자가 내린 판단과 선택이 어떻게 상황을 바꿔냈는 지를 따라가며, 사건을 하나의 결론이 아닌 체험의 층위로 확장한다.


연출 방식 역시 기존 다큐멘터리 문법과 선을 긋는다. 내레이션과 인터뷰를 과감히 배제하고,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사건을 구성한다. 특히 무성영화의 문법을 차용해 자막을 설명이 아닌 이미지로 활용하는 점이 눈에 띈다. 글자의 크기와 리듬, 배치 변화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음악은 대사처럼 기능하며 장면의 긴장과 호흡을 이끈다.


여기에 AI 이미지, 애니메이션, 웹툰·게임 그래픽 등 이질적인 시각 요소들을 병치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흔든다. 실제 기록 영상과 재구성된 이미지, 디지털 그래픽이 교차하는 구조는 관객이 사건을 단순한 정보가 아닌 감각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장의 소음을 정제하기보다 그대로 살리고, 저음과 진동을 강조해 공간의 압박감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에서 함께 느끼는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감독은 “새롭지 않다면 왜 하지, 다르지 않다면 왜 하지. 늘 그걸 스스로 묻는다”며 “다큐멘터리라면 나레이션과 인터뷰 없이도 만들어보자는 것이 나에게 던진 숙제였다. 무성영화가 영화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로 사유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감독은“계엄 직후 불안감이 감돌던 시기에 건물 주변을 맴도는 총을 멘 군인의 눈빛이 담긴 이미지를 본 순간 연출을 결심했다”라며“그날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영화가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남태령’은 같은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되, 이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작품은 12·3 비상계엄 이후인 2024년 겨울, 서울로 향하던 전봉준투쟁단 농민들의 행렬이 남태령에서 경찰에 가로막히며 벌어진 ‘남태령대첩’을 중심에 둔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당시 현장을 넘어, 그 이후 이어진 움직임에 주목한다.


이 작품이 응시하는 것은 충돌의 순간 자체가 아니다. 그날 밤 멈춰선 길 위에서 어떻게 새로운 광장이 형성됐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집중한다. 농민과 시민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낸 인물들, 그리고 현장을 지나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 감각을 이어가는 이들의 서사를 통해 사건 이후의 시간을 확장한다.


결국 ‘남태령’은 남태령을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반복되고 이어지는 상태로 제시한다. 단 하루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그 경험이 이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탐색한다. 이러한 시선은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 선정 이유에서도 드러난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이 하룻밤의 경험이 2030세대 여성들과 농민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했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단일한 시선으로 고정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감각과 체험을 통해 그날을 재구성하거나 이후의 관계와 변화를 따라가며 의미를 확장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을 풀어낸다. 기록 중심의 접근에서 나아가, 사건을 어떻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란 12.3’과 ‘남태령’은 이러한 흐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동일한 사건을 둘러싼 다큐멘터리의 접근이 한층 다층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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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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