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촉법소년이라 괜찮다”…시청자 분노케 한 ‘그 장면들’ [콘텐츠 속 촉법소년①]
입력 2026.04.14 11:01
수정 2026.04.14 11:02
‘비트’·‘말죽거리 잔혹사’ 등 청소년 범죄 심각성 부각한 영화 이어
촉법소년으로 현실 반영하는 요즘 드라마들
배우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두 눈을 감고 팔을 양옆으로 활짝 펼치는 영화 ‘비트’ 속 모습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비트’는, 학폭(학교 폭력)·입시 경쟁·가출 등 청소년 문제를 다루면서도 결국엔 희망적인 메시지로 귀결되는 여느 청소년 영화‧드라마와는 다른 선택으로 주목받았다. 주인공이 결국 조직폭력배가 되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어두운’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틀’을 깬 것이다.
ⓒ영화 비트 포스터
이후 미디어에서 청소년 문제는 단골 소재가 됐다.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폭력이 내재화된 1970년대 학교를 배경으로 학폭의 심각성을 부각했으며, 2010년대에는 ‘복잡한’ 청소년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독립영화들이 등장해 청소년 영화의 폭을 넓혔다. 대표적인 예로 ‘파수꾼’(2011)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며 미묘하게 달라지는 10대들의 관계망을 포착, 학폭 문제가 단순히 물리적 폭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화 ‘박화영’(2018)은 가출 청소년들의 일상을 통해 10대의 ‘불안함’을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드라마 분야에서는 ‘수위 높은’ 전개보다는 입시 문제 또는 로맨스로 ‘희망적인’ 분위기가 한동안 유지됐다. 1990년대 흥행한 ‘학교’ 시리즈가 2020년대 부활했지만, 다수 작품이 결국엔 입시 문제와 로맨스로 귀결되는 아쉬운 흐름을 보여줬다. 미성년자 인신매매를 주도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로 충격을 선사한 넷플릭스 ‘인간수업’(2020년)을 필두로 학폭 문제를 수위 높게 풀어낸 ‘약한영웅’ 시리즈,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룬 ‘하이쿠키’, ‘선의의 경쟁’ 등이 이어지며 OTT 플랫폼이 그 아쉬움을 채웠다.
그럼에도 청소년 문제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대다수 작품이 청소년 문제와 장르적 재미를 결합해 흥미를 이끄는가 하면, ‘그들만의 문화’를 디테일하게 조명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며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촉법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다. 촉법소년은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뜻하는데,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0년간 유지되고 있다.
촉법소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그들의 범죄 행위가 우리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경고’를 줬다.
대표적으로 2018년 방송된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는 ‘촉법소년’을 핑계 삼아 경찰까지 폭행한 소년들을 붙잡는 과정을 통해 ‘해당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경찰 오양촌(배성우 분)은 “네가 범죄를 저질러도 나라에서 봐주는 촉법소년이라는 거 다 알고 있구나?”라며 그들의 영악함에 혀를 내둘렀고, 또 다른 경찰 기한솔(성동일 분)은 “너희들은 너희들이 똑똑한 거 같지? 경찰 아저씨들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알려주겠다”라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2020년 방송된 OCN 드라마 ‘번외수사’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이 무리를 형성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으로 분노를 유발했다. 특히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권기웅(이풍운 분)이 ‘촉법소년’이라는 제도를 대놓고 이용하는 모습으로 ‘촉법소년’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켰다.
어린아이의 ‘섬뜩한’ 범죄가 묘사될 때는 시청자들의 분노 섞인 반응이 즉각 이어졌다. ‘추리의 여왕2’에서는 방화 범죄를 저지르는 초등학생 원재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때 해맑은 얼굴로 범죄를 저지르는 의 ‘섬뜩함’이 시청자들의 소름을 유발했다.
이후에도 드라마에서는 촉법소년 에피소드는 수시로 등장했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트리거’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10대가 “어차피 촉법이라 교도소도 안 가고 아무도 나 못 이긴다니까 나 천하무적이에요”라고 말하고, SBS 드라마 ‘소방관 옆 경찰서’에서는 친구를 불법 도박에 빠지게 하고 결국 사망케 한 10대가 “난 생일이 3개월 남은 촉법소년”이라며 범죄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를 보였고, 1950~60년대를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에서도 부모님을 죽인 10대가 경찰에 잡히자 “나 촉법소년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다.
ⓒ드라마 '소년심판'·'라이브' 영상 캡처
드라마 ‘리턴’의 사례처럼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기록에 남지 않은 것에 대해 꾸준히 ‘죄책감’을 가진 어른이 등장하기도 했다. 청소년에게 ‘반성’의 여지를 주는 촉법소년의 ‘순기능’을 실감케 한 사례였다.
이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는 시도도 이어진다.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은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 심은석이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소년범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주목받았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보호받아야 하는가, 처벌받아야 하는가”를 메인 질문으로 삼아 법정 안팎에서 치열하게 이를 고민했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제작돼 국내에서도 회자가 된 2025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의 시간’은 같은 반 친구의 살해 용의자가 된 13세 소년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청소년들의 현실을 파고들었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SNS에서 이뤄지는 소통과 그 부작용을 4회에 걸쳐 분석했다.
즉, 이제는 어린 소년들의 범죄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확장된 모양새다. 이때, ‘어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촉법소년을 둘러싼 다양한 메시지의 작품들이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