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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을 현실로 번역하는, 하정우의 생존 기술 [D:PICK]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13 15:45
수정 2026.04.13 15:46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으로 19년 만에 안방 복귀

'영끌 건물주' 기수종 역

“비현실적 상황조차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에너지가 있는 배우.”


임필성 감독은 하정우를 “비현실적 상황조차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에너지가 있는 배우”라고 평했다.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하정우는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하정우가 연기하는 기수종은 표면적으로는 건물주지만 실제로는 고금리와 공실 문제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다. 그는 건물주의 여유 대신 배달 일을 하며 이자를 갚는 소시민의 피로감을 연기한다.


ⓒtvN

가짜 납치극이나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살인 등 극단적인 설정도 하정우를 거치면 당장 오늘을 버티기 위한 절박한 생존 수단이자 고단한 ‘업무’처럼 묘사된다. 배달 헬멧을 쓴 채 건물을 오가는 그의 피로한 눈빛과 무심한 대사 처리는 장르적 긴장감을 ‘먹고사는 문제’라는 보편적 맥락으로 끌어내린다. 비현실적인 범죄 서사를 우리 주변의 비극으로 느끼게 만드는 이 지독한 일상성은 하정우만이 지닌 독보적인 자산이다.


앞서 연기했던 테러 중계석이나(‘더 테러 라이브’) 무너진 터널(‘터널’), 지하 벙커(‘PMC: 더 벙커’), 해이재킹된 비행기(‘하이재킹’) 등 일상과 단절된 위기 속에서 하정우가 보여준 생존본능과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허탈한 유머, 인간적 고뇌는 그 공간을 생활의 현장으로 끌어내리는 힘이 있다. 재난 작품 뿐 아니라 코미디나 스릴러 등을 불문하고 그가 맡은 캐릭터에는 모두 비현실적 상황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묘한’ 포인트들이 묻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역시 작가 혹은 연출자의 디렉팅도 있었겠지만, 하정우 특유의 화술이나 캐릭터 만듦새가 기수종이라는 독보적인 인물을 탄생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극의 구조만 놓고 보면 허술한 구석이 많다. 매회 누군가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고, 범죄가 판치는데 경찰은 무능하다. 위태로운 공조가 이어지는 전개는 소위 ‘막장 종합판’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터무니없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개연성을 확보하는 이유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 밀도에 있다.


하정우를 필두로 임수정, 김준한, 정수정 등 화려한 캐스팅은 각자의 캐릭터를 빈틈없이 채운다. 배우들의 표정 하나와 대사 한마디에 복선이 스며 있어 시청자는 어느덧 이 황당한 전개에 설득당하고 만다.


특히 하정우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어떻게 극의 구조적 허점을 메우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허술한 설정조차 현실의 무게감으로 치환해내는 하정우의 연기는, 이 터무니없는 블랙코미디를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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