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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인간을 투영하는 거울”…연극 ‘뼈의 기록’ [D:인터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4.14 07:46
수정 2026.04.16 10:50

SF작가 천선란 동명 소설 무대화

"2085년 폐행성이 된 지구"라는 배경 추가

"기술 발전 하는 시대,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5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아꼈던 소설이 연극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벅참이 느껴져요.”(천선란)


2024년 국립극단 ‘천 개의 파랑’을 시작으로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무대에 올린 소설가 천선란과 연출가 장한새가 ‘뼈의 기록’으로 다시 만났다. 스스로를 ‘로봇 덕후’라 칭하는 두 창작자의 만남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던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비스를 현실의 무대로 불러내는 동력이 됐다.


ⓒ예술의전당

지난 4일 개막한 연극 ‘뼈의 기록’은 인간의 시신을 염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원작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로봇이 인간의 사후를 배웅하며 겪는 내면의 변화를 다룬 단편 소설이다. 장한새 연출은 이를 무대화하기 위해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성공해 지구가 폐행성이 되어가는 2085년이라는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추가했다.


“과거의 로봇이 외부적인 시선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우리를 투영하는 거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SF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로봇이라는 타자의 눈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소중히 여겼던 신념이나 가치들이 어떠한 고민 없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장한새)


천선란 작가는 로봇이라는 개체가 주는 위로가 감정의 과잉이 아닌, 묵묵한 ‘경청’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천 작가는 “처음에는 로봇이 인간을 위로한다는 생각 없이 글을 썼지만, 인공지능에 고민을 털어놓으며 소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세상이 인간끼리의 언어로 말할 수 없을 때,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전했다.


장 연출은 천 작가가 바라보는 로봇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자신만의 색깔을 덧댔다. 그는 “천선란 작가님의 로봇이라는 존재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작가님이 보는 이 동시대의 세상은 따뜻한 로봇이 필요할 정도로 차가운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독자들이 책으로 따뜻한 감성을 읽었다면, 무대에서는 오히려 차가운 세상을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이번 공연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가진 공간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장 연출은 극장의 높은 층고와 깊이감을 활용해 로비스가 머무는 영안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이 공간은 시신이 안치되는 물리적 장소인 동시에 로비스의 모든 기억과 학습 데이터가 중첩되는 ‘데이터 박스’로 기능한다.


“무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관’처럼 보이기를 바랐어요. 죽은 자의 관이 자연스럽게 땅 밑으로 내려가는 보편적인 감각을 무대 전체에 투영한 겁니다. 또한 로비스가 영안실 밖을 선택하는 순간 공간성이 크게 변화하도록 설계해, 필요에 의해 존재하던 기계가 자신의 의지로 경계를 넘는 찰나를 시각화했습니다.”(장한새)


천 작가는 무대 위에서 살아난 로비스의 기술적인 구현 방식과 배우의 연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로비스는 표정이 없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라 배우가 너무 감정적으로 연기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무대에서 배우가 보여준 몸짓, 시스템 오류가 걸린 듯한 버벅거림 등 디테일은 제가 상상한 로봇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또 “좁은 영안실을 탈출해 시체를 끌고 나가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하게 표현됐다”고 덧붙였다.


두 창작자의 대화는 기술이 예술의 영역을 위협하는 시대에 대한 통찰로 확장됐다. 천 작가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로 ‘욕망’을 꼽았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명령 없이는 이러한 욕망을 가질 수 없고요. 또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다시 지구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제 믿음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이 삶을 어떻게 더 잘 살아야 할지를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천선란)


장한새 연출 역시 연극 ‘뼈의 기록’이 관객들에게 단순한 슬픔을 넘어 실존적인 질문을 남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로봇을 무대에 세웁니다. 기술이 우리 삶에 너무 깊이 들어와서 이제는 기술 없이 인간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으니까요. 로봇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고, 우리가 어떤 소중한 가치와 신념을 놓치고 있는지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장한새)


연극 ‘뼈의 기록’은 내달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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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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