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광산자원’ 등장에 세계 철강업체들이 떨고 있는 속사정
입력 2026.04.12 07:07
수정 2026.04.12 07:07
중국광산자원, 글로벌 철광석 시장 뒤흔드는 ‘태풍의 눈’으로 등장
발레, BHP그룹 등 글로벌 광산기업과 올해 계약 앞두고 힘겨루기
‘구매자연합’ 차원 넘어 시장조정자 역할을 강화, 철강업체와 갈등
韓 철강기업은 물론 세계적 철강기업, 고환율·원료비 상승압박 커
중국을 공식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왼쪽) 호주 총리가 지난해 7월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당시 엘버니지 총리가 이끄는 방중단에 세계적 철광석 업체들인 BHP, 포테스큐, 리오틴토와 호주 최대 철강기업 블루스코프 스틸 경영진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 EPA/연합뉴스
‘중국 철광석 구매대표’격인 중국광산자원이 글로벌 철광석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2500억 달러(약 370조원·지난해 말 기준) 규모의 세계 철광석 시장에서 막강한 '바잉파워'(Buying Power·구매력)을 앞세운 최대 수요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철광석 가격을 ‘농단’(壟斷)할 뿐 아니라 결제통화도 달러화에서 중국 위안(元)화로 바꾸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철광석 구매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설립한 국유기업 중국광산자원(中國礦産資源)그룹(CMRG)이 세계 철광석 시장을 뒤흔드는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고 미 블룸버그통신 등이 지난 2일 보도했다. 2022년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공산당 중앙위원회(당중앙)와 국무원(행정부)이 설립한 중국광산자원은 국가단위 구매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경제 참모진과 핫라인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중국광산자원은 지난해부터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업체로 꼽히는 브라질 발레(Vale), 호주 BHP그룹 등 글로벌 광산 기업들과 올해 판매계약을 두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종전엔 중국 내 제철 기업, 트레이더 등 구매자들이 개별적으로 BHP와 거래했으나 중국광산자원이 이들을 대표해 일괄적으로 협상하기 시작한 이후 전례 없이 가격을 ‘후려치는’ 바람에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갈등 수준은 2000년대 이후 최고조로 증폭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갈등의 주요인은 중국광산자원이 단순히 ‘중국 구매자연합’ 차원을 넘어 사실상 시장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산돼 있던 중국 제철사와 트레이더의 수요를 하나로 묶어 협상력을 키운 뒤 지난해 9월부터 중국 내 제철업체에 일부 BHP제품 사용을 제한하고 거래 지침을 내리는 등 구매 흐름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의 BHP그룹 본사. ⓒ AFP/연합뉴스
여기에다 항만검사 강화, 저장비용 인상 등 간접적인 수단을 동원해 물류 흐름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철광석은 항만에 입고된 뒤 일정 기간 쌓여 있다가 국내 구매자에게 넘어간다. 이때 항만 재고는 가격 변동을 기다리거나 비공식 거래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중국광산자원이 항만검사룰 강화하고 저장비용 인상을 통해 물류를 지연시키고 고의로 재고 축적을 어렵게 만들어 우회 거래를 차단하고 물류 흐름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업체 입장에선 비용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보유 물량을 조기에 처분하거나 거래방식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광산자원의 이런 전략은 BHP그룹 등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해상 철광석 물동량의 70%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에서 수요가 통제되기 시작하면서 일부 제품은 판매 차질과 가격할인 압박에 직면했고, 기존 달러화 기반 거래구조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세계 4위 철광석 업체인 호주 포테스큐의 디노 오트란토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을 통해 “현재 글로벌 철광석 시장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바로 중국광산자원”이라고 공개적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철광석 공급은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위축되는 상황인 만큼 협상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넘어갔다”며 “지금이야말로 구매자 그룹이 힘을 과시할 최적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는 2022년 세계 최대 철광석 수입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고수익을 올리던 광산업체들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자본금 30억 달러 규모로 중국광산자원을 출범시켰다. 당시 철강업체들의 수익성이 극도로 낮거나 적자에 가까웠던 상황에서 광산업체들의 높은 이윤은 철강업체들의 불만을 키웠다.
중국 기업들이 최대 지분을 소유한 아프리카 서부 기니의 시만두 철광석 광산.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광산자원은 설립 이후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출신 고위 관료인 가오가오(高杲)를 사장으로 영입하고 엔지니어와 회계사 수백명을 채용하며 몸집을 급격히 불렸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의 추정에 따르면 중국광산자원은 현재 중국 연간 철광석 수입량(지난해 말 기준 12억 3655만t) 중 절반이 넘는 물량에 대해 제철소를 대신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철광석 가격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며 지난해 7월 이후 t당 1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우드맥킨지는 2026년 가격을 t당 98달러, 2027년에는 95달러로 각각 내다봤다. 다만 2028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미개발 철광석 매장지 중 하나인 아프리카 서부 기니의 시만두산맥 철광석 광산이 본격적으로 채굴 작업에 돌입하면 전 세계 공급의 7%가량 차지하는 6500만t 규모의 잉여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는 오히려 중국광산자원에 협상에서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만두 광산의 최대 지분 보유자는 중국 기업들인 까닭이다. 캐나다 최대 캐나다왕립은행(RBC) 캐피털 마켓의 칸 페커 애널리스트는 "시만두의 생산 확대는 시장구조가 변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는 중국에 철광석을 공급하는 호주의 지배적 위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힘과 조직을 키운 중국광산자원은 국제 원자재 가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이 운영하는 플래츠(Platts) 지수 대신 중국 자체 철광석 지수를 도입하라고 광산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광산자원의 핵심 전략은 철저한 '공급자 갈라치기'다. 페커 애널리스트는 "중국광산자원이 세계 광산 기업들을 선별적으로 공략하며 서로 경쟁을 붙이는 ‘분할 통치’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 자료: 미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
과거 개별 제철소 단위로 진행하던 수입 창구를 국유기업 하나로 통합해 BHP·발레 등 글로벌 거대 광산기업을 상대로 ‘각개 격파’식 협상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만도우 광산이 본격 생산에 들어가며 230억 달러 규모의 물량이 시장에 풀리게 된다. 이는 곧 호주산 철광석 의존도를 낮추려는 중국에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광산자원의 행보가 단순한 가격 협상을 넘어 ‘금융 패권 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중국광산자원이 원자재 거래에서 기축통화인 달러화 대신 중국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려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미 BHP그룹과 리오틴토 등은 중국 항만 보관 물량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있다.
데이비드 카초 우드맥킨지 연구원은 "철광석에서 시작한 위안화 결제 관행은 중국이 소비와 가공을 장악한 리튬과 구리, 희토류 등 전략 광물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자원 안보’와 ‘탈(脫)달러’ 전략이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회의론도 있다. 철광석 시장은 이미 금융화되고 복잡해진 구조라는 것이다. 현물거래뿐 아니라 선물·지수 등 다양한 가격형성 구조가 얽혀 있는 만큼 특정 주체가 개입한다고 해서 가격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말이다. 파스칼 마소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는 “중국은 과거에도 시장 통제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성과는 일시적이었고, 이후 시장구조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그는 "만약 2006년에 중국광산자원이 있었다면 다른 상황이었겠지만, 지난 15년 간 시장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모두 현재 시스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우탐 바르마 포르테스큐 전직 임원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은 중국광산자원이 더 강력해지길 바라지만, 지금까지는 여전히 기본적인 시장 원칙이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국광산자원이 주도하는 가격 협상력 강화는 무엇보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원가 경쟁력을 높여주는 사이 한국 철강기업들은 물론 글로벌 철강기업들이 고환율과 원료비 상승 압박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 내수 및 부동산 경기침체로 소화되지 못한 철강 물량이 '밀어내기식' 헐값 수출로 이어지면서 시장 가격까지 교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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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