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정책] 고물가·고유가 장기화…韓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문턱
입력 2026.04.10 12:39
수정 2026.04.10 12:39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공급망 비상
수입물가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우려
수출 회복세 막는 내수 부진·심리 위축
정부 “2주 휴전…중요한 분수령될 것”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소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중동 전쟁이 40일째를 맞으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 유가를 밀어 올리며 물가를 자극하는 동시에, 가계의 소비 여력과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는 ‘이중고’가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단순한 일시적 충격을 넘어설 수 있는 만큼,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유가發 인플레이션 위험…산업 전반으로 번지는 후폭풍
서울 주유소 평균 경유 가격이 2천원을 넘긴 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경유가 2천19원에 판매되고 있다.ⓒ뉴시스
이번 위기의 진원지는 국제 유가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통제되면서 원유 공급 차질의 여파가 시장에 반영됐다.
10일 3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실시된 직후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경유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88.51원으로 전날보다 3.55원 올랐다. 경유 가격은 1983.59원으로 3.25원 상승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압도적인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원유·가스·나프타 등 기초 원자재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 철강, 운송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생산 원가를 즉각적으로 끌어올린다.
에너지 비용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다. 기업들이 채산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국가데이터처의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2.2%로 집계됐다. 석유류 가격이 10% 가까이 급등했고, 여기에 고환율이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정부의 물가안정목표치인 2.0%에 근접하지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은 임계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표상 물가안정목표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가상승 위험 수준은 아니지만 전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어 석유류 가격 등이 올라 일정 부분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가 석유를 중심으로 올라 소비에 영향을 줬을 것이고, 불확실성이 높아져 기업의 투자를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소비자심리 위축…“공급망·에너지 구조 개선 시급”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물가 상승은 경기 둔화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국내 경제는 일부 둔화 신호를 드러내고 있다.
KDI는 지난 7일 ‘경제동향 4월호’를 통해 완만한 경기 개선 흐름을 보여왔던 한국 경제가 중동 전쟁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KDI는 “세계 경기 불안으로 수출 여건이 다소 악화된 가운데 불확실성 확대로 투자 회복도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따라 기업심리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도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3월 들어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은 제조업(71)과 비제조업(70) 모두 하락하며 기준치(100)를 한참 밑돌았다. BSI는 기업이 느끼는 체감 경기로,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기업의 심리가 위축되면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커진다.
소비자심리지수(CCSI) 역시 107.0으로 전월(112.1) 대비 5.1포인트(p) 하락했다. 지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약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여전히 기준치 100 위에 머물고는 있지만, 중동 전쟁 이전과 비교해 하락하며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같은 기업·소비자심리 동시 하락은 실물경제가 꺾일 가능성을 키운다. 송영관 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에너지 가격은 올라갈 가능성이 높고, 이자율은 낮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투자가 힘들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반된다. 따라서 물가를 잡으려 재정을 조이면 경기가 더 나빠지고, 경기를 살리려 돈을 풀면 물가가 치솟게 된다.
전문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앞에서 단기적인 부양책보다는 공급망 다변화와 에너지 효율 제고 등 구조적 체질 개선을 통해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우형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상태로는 가격이 오른 게 당연하지만 에너지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정상화되기 어렵다. 공급망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추가경정예산으로 돈을 풀면 오히려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중동 전쟁 2주 휴전을 분수령으로 봤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미국과 이란 간 휴전합의로 국제유가와 금융시장이 다소 진정되는 등 중동전쟁이 중대한 분수령을 맞았다”며 “향후 협상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공급망 충격과 영향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급망 핫라인을 통해 현장의 애로 해소를 밀착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