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2000 쇼크] 고유가마다 반복된 유류세 처방…세수손실·효과한계 경고
입력 2026.04.09 10:11
수정 2026.04.09 10:14
유류세 인하 4년…세수 손실 13.2조원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 기반 위기
교통에너지환경세 3.9조원 미달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서울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돌파한 지난 7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뉴시스
중동 전쟁 대응을 명목으로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추가 확대했지만 2021년부터 4년째 이어진 한시 인하 조치로 세수 기반이 잠식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27일부터 휘발유 유류세 인하폭을 현행 7%에서 15%로, 경유는 10%에서 25%로 각각 확대했다. 물가 급등기마다 정부가 꺼내 든 유류세 인하 카드가 이번에도 다시 등장한 것이다.
4년째 반복된 처방…교통에너지환경세 13조원 구멍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유류세 한시 인하는 2021년 11월 국제유가 급등을 계기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인하폭 확대와 연장이 반복됐다. 2022년 7~12월에는 법정 최대치인 37%까지 인하폭이 확대됐고, 이번 중동 전쟁으로 다시 폭이 넓어졌다.
이 과정에서 세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1년부터 3년간 유류세 인하 조치로 걷지 못한 세수는 13조2880억원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22년 5조1000억원, 2023년 5조2000억원이 각각 감소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실제 징수액은 유류세 인하 이전인 2021년 16조6000억원에서 2022년 11조1000억원으로 5조5000억원 급감했다. 2023년에도 10조8000억원에 그쳤다.
2024년 기준, 정부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을 15조3000억원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11조4000억원에 머물렀다. 예산 대비 3조9000억원이 덜 걷힌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류세를 10% 인하할 경우 연간 세수가 1조2000억~1조8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재경부 세제실은 물가 상황과 세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하폭과 기간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고유가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한시 인하를 연장하는 방식이 되풀이되면서 ‘한시’라는 단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조기 종전 시에도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해 인하 조치가 단기간에 종료되기 어렵다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가격 인하 체감 미미…소비 절감 유인↓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세수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정책 효과 자체도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의 26~49%만 판매가격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경유는 효과가 더 낮았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유류세 인하 정책이 8개월 시행된 시점에서 서울 시내 주유소 99%가 국제유가 상승분에서 유류세 인하분을 뺀 것보다 판매가격을 더 많이 올렸다고 지적했다.
유류세 인하가 에너지 소비 절감 유인을 약화시킨다는 구조적 문제도 제기된다.
유류세는 온실가스 감축과 친환경 모빌리티 전환을 유도하는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데, 인하가 반복될수록 이 역할이 훼손된다는 분석이다.
고유가 대응 재정도 단순한 가격 보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 개선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구조적 전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기차 전환이 빨라질수록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 기반이 더 빠르게 약화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유류 소비를 기반으로 한 세수 구조를 유지할 경우 친환경차 증가에 따라 세수가 중장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를 섣불리 거둬들이기도 어렵다. 수입 물가가 높아지면 금리 인하가 제약되고, 이 경우 경기 침체로 이어져 전반적인 세수가 동반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유류세 인하 정책이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판매가격에 효과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며 “유류세 인하의 실효성이 낮다면 오히려 유류세를 원칙대로 징수하고 이 재원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이 필요한 대상에게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