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산업] 호르무즈가 쏜 '오일플레이션'…멈춰선 공장
입력 2026.04.08 10:01
수정 2026.04.08 15:12
원료 막히자 공장 가동률 하락…정유·석화 동시 압박
채권단 구조조정 착수…업황 악화에 금융 개입 본격화
휘발유 2000원 돌파 속 최고가격제 딜레마…공급 병목 리스크 확대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량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한 유조선이 술탄 카부스 항구에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동 전쟁이 40일을 넘기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가 기름값 상승을 넘어 공장 가동 차질로 번지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원료 확보가 막히면서 정유와 석유화학 업계에서 감산과 생산 축소가 현실화되는 등 산업 전반에 공급 충격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나프타 투입량을 줄이며 가동률을 낮추는 대응에 나섰다. NCC 설비 특성상 원료 투입이 감소하면 즉각 생산량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 기업은 정기보수를 앞당기거나 특정 라인의 가동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이를 '선제 대응'이 아닌 '비상 운영' 단계로 보고 있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생산 중단 가능성까지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정유업계 역시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설비 가동률은 약 9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정부 비축유 스와프와 대체 원유 도입에 의존한 결과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체 원유 확보 물량은 4월 5000만 배럴, 5월 6000만 배럴 수준으로 평년 대비 각각 60%, 70% 수준이다. 공급 여력이 구조적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가동률 유지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국면이다.
석유화학 업황 악화가 심화되면서 금융권도 구조조정 단계에 본격 진입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은 최근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 등 4개사를 사업재편 대상기업으로 선정하고 현장실사에 착수했다. 채권단은 실사 종료 시점까지 이들 기업의 채무를 7월 말까지 상환 유예하기로 했다.
이 같은 공급 압박은 소비자 가격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지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2000원을 넘어섰다.
이는 2022년 7월 이후 약 3년8개월 만이다. 전국 평균 역시 1968원 수준까지 상승하며 2000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특히 정부가 2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고시한 이후 12일 만에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약 149원 오르며 상승 속도가 가팔라졌다.
정부는 오는 10일 3차 석유제품 최고가격 고시를 앞두고 있지만 정책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가격을 억제하면 정유사 손실 보전 부담이 커지고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가격을 현실화하면 소비자 부담이 급격히 증가한다. 가격 통제 정책이 오히려 공급 축소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효과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수송 병목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 및 석유제품이 통과하는 글로벌 핵심 에너지 통로로 전 세계 해상 석유 교역량의 약 25%가 집중돼 있다. 대체 가능한 우회 경로는 하루 350만~55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해 해협 차질을 구조적으로 보완하기 어렵다.
이 구조에서는 유가 상승이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다.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원유뿐 아니라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수급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정유는 '가동률 유지', 석유화학은 '생산 지속'이라는 서로 다른 축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으며 산업 전반의 운영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해외에너지동향분석실은 보고서에서 "해협 수송이 중단될 경우 유가 급등은 불가피하며 물리적 공급 부족이 빠르게 발생할 수 있다"며 "전 세계 원유 여유 생산 능력의 대부분이 활용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보고서에서 "현재 상황에서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 침체로 인한 수급 안정화 밖에 답이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