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급등 국면서 다시 떠오른 외화예산 리스크 [세종 백브리프]
입력 2026.04.06 11:15
수정 2026.04.06 11:15
환율 흔들리자 외화예산 부담 부각…재정운용 시험대
기획처 “이·전용·예비비·환전제도 가동” 강조
예산편성 기준환율 1380원 제시…시장은 이미 그 위에서 출렁
외화부족 vs 물가상승… 아슬아슬한 재정운용 시험대를 표현한 이미지. ⓒ제미나이
브리핑은 정부의 입장을 가장 정제된 형태로 보여주는 창구다. 하지만 모든 사안이 브리핑 한 번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설명자료와 해명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공식 문서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입장을 밝히는 기능과 별개로, 그 문서만으로는 쟁점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서가 나온 시점, 대응의 속도, 설명의 범위, 빠진 대목까지 함께 살펴봐야 비로소 사안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백브리프’는 정부 설명의 ‘뒤쪽’을 읽는 코너다. 브리핑과 해명자료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설명이 나오게 된 배경과 정책 흐름,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문을 함께 짚는다. 데일리안은 정부가 말한 내용과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 사이의 간격을 따라가며, 독자들이 사안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획예산처는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가능한 최근 시점의 환율 추세를 반영하기 위해, 정부 예산안 편성 시기(8월)에 직전 3개월 평균 환율을 산출해 다음 연도 예산편성 기준환율을 결정합니다.
그 결과 2026년 예산편성 기준 환율인 1380원은 지난해인 2025년 5월 9일부터 8월 8일까지의 평균 환율로 결정된 것입니다.
정부는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화예산 과부족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이·전용 ▲예비비 ▲외화예산 환전제도 등 다양한 방안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에는 불확실한 외환시장에 대비해 외화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목적 예비비도 보강했습니다.” <4월 3일자 기획예산처 보도설명자료>
지난 3일 기획예산처가 외화예산 부족 가능성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낸 배경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3월 말 외환보유액이 4236억6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39억7000만 달러 줄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이를 달러 강세와 환율 변동성 관리 영향으로 설명했다. 로이터는 2일 ‘미국의 대이란 강경 발언 이후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며 달러지수가 100.02까지 올랐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9.03달러로 급등했다’고 전했다.이는 원화 약세와 달러 강세, 유가 상승이 한꺼번에 겹친 시점이었다는 뜻이다.
이번 사안이 커진 이유는 외화예산이 원화 예산과 다른 방식으로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올라온 ‘외화로 지급되는 예산 등의 환전에 관한 지침’은 외화로 환전돼 채권자에게 지급될 목적으로 편성된 예산을 별도로 관리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외화예산은 편성환율을 기준으로 짜이기 때문에 연중 환율 변동에 따라 부족 또는 잉여가 생길 수 있다고 짚어 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08년에는 환율 급등으로 부족분을 예비비와 이전용 등으로 메웠다”며 “2002~2007년에는 반대로 환율 하락으로 발생한 잉여예산 4456억원이 문제로 지적됐다”고 분석했다.
환율 상승 흐름이 외화예산과 재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달러 강세를 상징하는 상승 화살표와 통화 기호가 전면에 배치되고, 외화예산을 형상화한 블록과 저울 구조가 함께 등장해 환율 변동이 예산 안정성을 흔드는 상황을 시각화했다. ⓒ챗지피티
기획처 “예산 부족하면 메울 장치 있다”
기획처가 지난 3일 내놓은 설명의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화예산 과부족에 대비해 이·전용, 예비비, 외화예산 환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에 외화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한 목적예비비를 보강했다. 이어 올해 예산편성 기준환율 1380원은 정부 예산안 편성 시기인 지난해 8월 직전 3개월 평균치, 구체적으로 지난해 5월 9일부터 8월 8일까지의 평균 환율을 반영한 값이라는 설명이다.
즉 기획처는 ‘부족해질 경우 메울 장치가 이미 있다’는 대응 수단을 밝힌 것이다. 이 설명이 나온 시점의 정책 환경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올해 들어 한국은행은 환율을 물가의 상방 리스크로 반복해서 언급했다. 이창용 총재는 1월 신년사에서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말 1400원대 후반까지 올라 시장의 경계감이 높다”며 “환율 상승이 물가 압력을 키우고 내수기업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달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도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 중후반으로 높아졌고, 높은 환율 변동성에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외화예산 논란이 예산 집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물가, 외환시장, 통화정책이 겹친 국면에서 불거졌다는 얘기다.
정부가 정한 기준환율(1380원)과 시장의 현실 환율 사이의 격차가 예산 운용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 ⓒ제미나이
환율 격차 커질수록 늘어나는 재정 부담
남는 쟁점은 대응 수단의 존재보다 그 수단의 지속 가능성이다. 정부 설명은 부족분 보전 장치를 열거했다. 그러나편성환율(1380원)과 실제 집행환율(현재 환율)의 격차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크게 벌어질 경우 어느 정도 재정 부담이 추가되는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최근 민간 연구에서도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거시경제 운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른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높은 원화환율이 물가 상승 압력 등 거시경제 운용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의 폭과 깊이를 키워 외부 충격 때 쏠림을 완화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문도 이 대목에 모인다. 외화예산 부족을 예비비나 이·전용으로 메우는 방식은 단기 처방으로는 작동할 수 있다.
반면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외화 결제가 많은 사업은 집행 시점마다 재원 압박이 불가피하다. 그 부담은 다시 다른 재정 항목 조정으로 번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된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3월 물가 흐름을 두고 ‘에너지가 달러로 가격이 매겨지는 구조 탓에 원화 약세가 물가 충격을 키운다’며 ‘원화는 3월 한 달 동안 달러 대비 약 5% 하락했다’고 전했다. 환율 문제를 외화예산 관리 차원에만 가둘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정부의 이번 설명은 외화예산 부족 가능성을 부인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기보다, 부족분을 메울 수단이 있다는 점을 부각한 대응에 가까웠다.
다만 시장과 현장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명쾌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편성환율 적정성을 어떤 기준으로 다시 점검할지, 추경의 목적예비비 보강이 어느 범위까지 완충 역할을 할지, 환율 급등이 반복될 때 외화예산 운용 기준을 손볼 필요는 없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더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올해 초 “환율 상승이 물가 상승압력을 높이고 내수기업 등에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은 이번 논란의 함의를 압축한다. 외화예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고환율 시대 재정 운용의 취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