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약방문’으론 안 돼…조기 경보가 ‘골든타임’[문제는 공급망③]
입력 2026.04.04 06:00
수정 2026.04.04 06:00
일상이 된 한국 공급망 위기
고위험 고착 전 선제적 개입 필요
위험 유형별 맞춤형 전략 수립
EWS 기반 지능형 관리로 전환해야
지난 7일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 무스카트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공급망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이 현실화한 ‘고위험’ 단계에서의 대응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사후 조치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는 위험 형성 초기 단계를 포착해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조기경보시스템(EWS)’ 기반 공급망 관리로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보이지 않는 공급망 위기: 한국 공급망의 착시와 조기경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공급망 문제는 ‘상시 위험’ 단계로 진입했다. 중동 위험(리스크)이나 미·중 무역 갈등 차원의 일시적 위협이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공급망이 단순 물류 흐름을 넘어 국가 안보 핵심 동인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는 한국 경제를 장기적으로 발목 잡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를 기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러·우 전쟁, 주요국 기술 통제 등 대형 악재가 잇따르면서 공급망 위험 기준선(Baseline) 자체가 상향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원자재 기준으로 위기 품목 자체는 많지 않다. 문제는 해당 품목들의 영향력은 산업 전체를 흔드는 ‘고의존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KIEP가 EWS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9200여 개 수입 품목 중 약 18.9%인 1745개 품목이 새롭게 경보 구간에 진입했다.
참고로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 위기 때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21년 11월부터 공급망 위기 조기 파악을 위해 EWS를 운영 중이다.
사실상 상시 위기에 빠진 한국 공급망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은 ‘신규 위험 진입 단계’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중동의 가스 자원과 한국의 수소 기술이 결합되는 미래 에너지 협력 구상. 블루수소 생산과 저장 인프라 구축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하는 전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챗지피티
“위험 형성 초기 개입이 가장 효과적”
신규 위험 진입 단계는 위험이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전 초기 구간을 말한다. 매달 전체 품목의 약 20~25%가 이 구간에 있다. 고위험 단계에 진입한 이후에는 대체 수입선 확보나 비축 물량 방출 등에 드는 비용이 급증하고 정책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위험 형성 초기 시점 개입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위험의 구조적 고착을 사전에 방지할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보고서는 모든 위험 품목에 대해 일률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다. 위험 유형을 분석해 맞춤형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물류나 수급 충격으로 인해 위험도가 급등한 품목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원인 분석과 함께 단기 조달선 점검을 우선해야 한다.
다음으로 구조적 취약성이 고착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편입 품목은 정부 비축을 늘려야 한다. 더불어 공급선 다변화,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대체 등 중장기적인 대응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항공기 부품이나 특정 정밀 부품처럼 공급국이 독점 구조에 가깝고 기술 장벽이 높은 ‘구조 취약형’ 품목은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구조적 조건임을 인정하고 세밀한 상시 관리 체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해법의 핵심으로 데이터와 속도를 강조했다. 단순히 특정 시점의 의존도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수입 안정성, 공급 집중도, 변동성 등 다양한 구조적 요인을 결합해 위험의 축적 과정을 동태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EWS는 이러한 신규 위험을 상시 식별하고 정책 개입의 시점과 강도를 결정하는 핵심 운영 인프라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잠재적 취약성 축적 단계에서부터 이상 징후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위험이 현실화하기 전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보고서는 “공급망 위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상시적 변수”라며 “정책의 핵심은 위기 발생 이후 대응이 아니라 위험이 가시화하기 전 변화 신호를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다”며 “EWS는 이러한 정책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분석 도구이자 공급망 위험 관리의 핵심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