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AI 신약' 총력전…글로벌 자본 공세 'K-특화 전략'으로 맞서야 [신약 from AI]
입력 2026.02.08 06:00
수정 2026.02.08 06:00
과기부·복지부 주도 실질적 AI 신약 생태계 구축 속도
플랫폼형 신약 개발 확장 가능성 무한, 실패도 데이터
약물 스크리닝 중심 전략은 한계, K-AI 특화 전략 요구
사람의 직관으로 설계하고, 경험으로 완성하던 제약·바이오 산업의 오랜 문법이 무너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AI가 있다. 올해 초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 수장들은 신년사를 통해AI를 ‘생존 키워드’로 선언했다. 글로벌 자본이 모이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도 주인공은 단연AI였다. 이제AI는 실험실 속 후보물질 발굴을 넘어 마케팅 현장까지 재편하며 산업의 전 주기를 관통하고 있다. AI가 다시 그리고 있는K-제약의 미래 지도를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AI(인공지능)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면서 정부의 지원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AI 활용 신약 개발 지원을 대폭 강화하며 사실상 국가 차원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개별 기업의 연구 역량을 넘어 국가적 데이터 인프라와 공공 플랫폼을 결합해 글로벌 AI 신약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석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빅파마와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정부 주도의 협력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노력을 넘어 데이터 파편화를 막고 규제 장벽을 허무는 공공의 마중물 역할이 국내 AI 신약 개발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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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약 개발 관련 이미지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범부처 역량을 결집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달아 가동하며 실질적인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AI 신약 개발 프로젝트로는 ▲AI 바이오 국가 전략 ▲K-멜로디 ▲K-AI 신약 개발 사업 등이 꼽힌다.
과학기술정통부는 최근 AI 바이오 국가 전략을 심의·의결하며 제약·바이오 산업 내 AI 활용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번 전략은 신약 개발을 비롯해 뇌와 역노화, 의료기기, 바이오 제조, 그린 바이오 등 5개의 핵심 분야에 특화된 AI 모델을 구축해 R&D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바이오 파운데이션 모델과 에이전틱 AI를 기반으로 AI가 스스로 후보물질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갖춰 5년 내 파이프라인을 10배로 확대하고, 생성형 AI 기반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300건까지 끌어올린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과기정통부와 보건복지부가 2024년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5년간 348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K-멜로디(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프로젝트는 연합 학습 기술을 이용해 기업 간 데이터 칸막이를 허무는 것이 목적이다. 연합 학습 기반 ADMET(약물 흡수·분포·대사·배설·독성) 예측이 가능한 ‘FAM’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대웅제약과 유한양행, 한미약품 등 국내 주요 제약사 8곳을 비롯해 총 2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신규 생산 데이터를 플랫폼에 공유해 AI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연합 학습은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한 곳으로 모으지 않고 개별 환경에서 AI를 학습시키는 기술로, 정보 유출 위험이 거의 없어 민감 정보의 ‘보호’와 ‘활용’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는 전임상과 임상 단계를 잇는 K-AI 신약 개발 전임상·임상 모델 개발 사업에도 2029년까지 총 371억원을 투입한다. 전임상 데이터 단절을 해소하고 AI 기반 임상 설계 플랫폼을 확산해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낮추는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필두로 주요 병원과 연구소, 제약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실제 연구 현장에서 AI 모델의 실효성을 실증하고 있다.
K-AI 신약 개발 사업에는 LG CNS도 가세해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LG CNS는 해당 프로젝트에서 ‘AI 기반 임상시험 설계·지원 플랫폼’ 개발을 주도하며, 참여 기관들의 AI 모델을 에이전틱 AI 기반으로 연계하는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보안 유지가 필수인 의료기관과 연구소 간의 데이터를 연합 학습 기술로 연결해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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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반 신약 개발 확장…희귀질환 등 차별화에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국가적 시도가 신약 R&D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필수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연구원 원장은 연구개발의 중심을 개별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 원장은 “플랫폼형 신약 개발은 확장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성과 성공 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레버”라며 “AI가 탐색 공간을 줄이고 플랫폼이 가설 검증의 루프를 제공함으로써 전체 의사결정 주기를 단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전통적 R&D의 실패는 단순 손실로 끝나지만, 플랫폼 체제에서는 실패 데이터조차 다음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을 돕는 자산이 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와 모델을 재사용하는 학습 곡선을 통해 다음 후보물질 도출에 드는 비용을 낮추고, 개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가적 프로젝트가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선 AI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인 약물 스크리닝 중심의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부회장은 “AI 신약 개발은 결국 거대 자본과 데이터의 싸움”이라며 “엔비디아나 구글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뛰어든 상황에서 단순히 알고리즘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승산이 낮다”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가 강점을 가진 아시아 유전체 데이터나 희귀질환, 정밀 의료 분야처럼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며 “국내의 우수한 병원 시스템을 기반으로 후반부 임상 데이터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격차를 줄일 실질적인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