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다시 만난 김태용·최우식이 차려낸 따뜻한 밥상 '넘버원' [D:현장]
입력 2026.01.29 17:55
수정 2026.01.29 17:55
2월 11일 개봉
12년 전 영화 '거인'으로 함께 성장했던 김태용 감독과 배우 최우식이 다시 손을 잡았다. '넘버원'은 날 선 감각을 보여줬던 전작들과 달리,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일상의 온기로 감싸 안으며 감독과 배우의 깊어진 호흡을 증명했다.
29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CGV에서는 김태용 감독, 배우 최우식, 장혜진, 공승연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넘버원'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뉴시스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 분)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 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우와노 소라의 일본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한국적 맥락에 맞게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김태용 감독은 "자극적이 콘텐츠가 많아지며 죽음이나 살인에 대해 너무 관대하단 생각을 했었다. '넘버원'은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눈으로 스쳐가는 이야기보다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 '넘버원'의 장점이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김태용 감독은 원작과의 차별점도 짚었다. 그는 "원작은 짧은 단편 소설로, 영화로 치면 초반 3분의 1 지점, 하민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의 설정에 해당한다"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그 이후, 은실과 하민이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는지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영화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 려은에 대해서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엄마와 아들 사이의 운명을 함께 건너갈 수 있는 다리 같은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떻게 보면 '거인'의 영재처럼, 려은에게 감독 개인의 자아가 개입돼 제3자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넘버원'은 앞서 김태용 감독이 선보였던 거인, '여교사'와는 장르와 정서 면에서 분명한 결을 달리한다. 날것의 감정과 긴장감을 전면에 내세웠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품고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밝은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에 김 감독은 "발라드 가수였다가 댄스 가수로 돌아온 느낌이다. '거인'과 '여교사'는 20대 때 만든 작품이다. 10년 동안 성장한 것 같다. '결핍은 결점이 아닌 가능성'이라는 려은의 대사가 감독으로, 인간으로 가진 감정을 아름답게 발표시켜 저와 같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넘버원'은 '거인'으로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이 의기투합해 눈길을 끌었다. 최우식은 "사실 부담이 컸다. 첫 번째로는 '거인'으로 저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고, 두 번째로는 김태용 감독님과 다시 만나는 만큼 '이번에는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감독님께 많이 기대고, 궁금한 점이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계속 물어보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우식은 "감독님과 '거인'으로 만났을 때가 거의 10년 전인데, 그때 저는 24살이었고 감독님도 20대였다. 서로 경험은 부족했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있었고, 그게 좋은 시너지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에는 10년의 시간이 지나 경험도 쌓였고, 그래서 현장이 훨씬 수월했다"며 "예전에도 호흡이 잘 맞았지만, 지금은 그 위에 새로운 요소들이 더해졌고 시나리오까지 만나면서 정말 즐겁게 연기했다. 굳이 모니터를 찾아가 묻지 않아도 감독님이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배우로서 굉장히 행복한 작업이었다"라고 만족했다.
최우식이 하민, 장혜진이 은실 역을 맡아 '기생충' 이후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최우식은 "'기생충'에서는 여러 배우가 한 장면에서 어우러지는 앙상블 연기가 중심이었다. 엄마와 일대일로 감정을 주고받거나 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라며 "이번 작품에서는 한 인물과 깊게 호흡하며 감정을 교류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티키타카를 충분히 펼칠 수 있어 굉장히 즐거웠다"라고 '기생충' 모자호흡과의 차이점을 짚었다.
장혜진은 "'기생충' 때부터 서로 편한 사이였고, 촬영 초반에도 우식이가 많이 챙겨줘 고마운 마음이 컸다. 당시에는 각자 연기하느라 바빠 서로를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최우식이 실제 제 아들과 너무 닮아 보여 놀랄 때가 많았다.예전에 '우리 아들이 너처럼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만큼, 저에게는 아들 같은 배우"라고 최우식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연기 호흡에 대해서는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그 사이 최우식의 감정이 훨씬 깊어지고 폭도 넓어졌으며, 표현도 한층 유려해졌다. 모니터를 보며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고 느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칭찬했다.
장혜진은 은실이란 캐릭터에 대해 "많은 상처와 힘든 시간을 겪으며 눈물이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아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끝내 감정을 눌러 담았다가 터뜨리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절망하기보다 ‘그럼 이렇게 해보자’며 늘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엄마"라며 "은실은 가사노동마저도 자신의 삶으로 유쾌하게 끌어안고,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여자다. 편집으로 드러나지 않은 서사까지 상상하며 연기하다 보니 가엾고 기특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엄마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공승연은 하민의 여자친구 려은 역을 맡았다. 공승연은 "영화에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두 사람의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라며 려은은 감독님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고 느껴졌고, 그래서 말투나 말의 리듬도 감독님의 것을 많이 따라 하려 했다"라고 연기 주안점을 밝혔다.
그러면서 "'거인'의 영재를 떠올리며, 관객들이 려은을 보며 '잘 컸다,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공승연은 최우식, 장혜진과의 호흡에 대한 부담도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두 분의 관계가 워낙 단단해 그 사이에 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현장에서는 두 분이 편안하게 안아주고 이끌어주셔서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함께 머물며 촬영하는 동안 정말 가족처럼 가까워졌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태용 감독은 "요즘 젊은 세대가 한국영화에 느끼는 거리감은 슬픔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넘버원'은 관객보다 먼저 울어버리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울 준비가 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따뜻한 밥 한 상처럼 받아들여, 한 끼 든든히 먹고 나온 뒤 다음 밥은 엄이어마와 함께 먹고 싶어지고, 전화 한 통을 걸게 만드는 작품이 됐으며 한다"라고 바랐다.
최우식은 "누구와 함께 보아도 좋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인이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라며 "누구나 언젠가는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희망적으로, 아름답게 건너갈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혜진은 엔딩 크레딧에 담긴 의미를 짚으며 "엔딩에 실제 스태프와 관객,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 사진이 올라가고, 그 위에 노래가 흐르는데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영화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작은 화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 큰 감동이었다"며 "울적한 날이나 따뜻한 밤이 그리울 때 다시 떠올리고 싶은, 함께 걸어가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2월 11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