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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근로자가 된다…그러나 미소짓는 건 로봇이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1.30 07:07
수정 2026.01.30 15:18

노동 보호와 비용 현실의 간극

보호의 대가, 누가 계산하는가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먼저 며칠 전 밤에 꾼 꿈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내가 평생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뭔지 아시는가.

로또도 아니고, 대통령 되는 꿈도 아니다.

골프 꿈이다. 그것도 악몽 쪽이다.

대개 내용은 비슷하다.

골프장에 혼자 늦게 도착해 동반자를 찾아 헤매거나, 골프백을 잃어버려 주차장과 카트 사이를 3천 보쯤 왕복하는 꿈이다.

이상하게도 시원한 언덕에서 저 멀리 내리막을 향해 드라이버를 호쾌하게 날리는 꿈은 단 한 번도 꿔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꿈은 좀 달랐다.

티샷을 하려고 캐디에게서 드라이브를 건네받는데, 캐디 얼굴이… 이상하다.

사람이 아니다.

쇳덩이다.

자세히 보니 인간 캐디가 아니라 로봇 캐디가 날 보고 희죽 웃고 있다.

어째어째 드라이브를 휘두르고 나니, 눈에서 LED가 깜빡이며 말한다.

“삐빅. 슬라이스 확률 87%입니다.”

나는 놀라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깼다.

그리고 아침 뉴스를 보며 깨달았다.

“아… 이거 예지몽이었구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줄여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골프 동호인의 ‘동반자’이고, ‘멘탈 트레이너’이고, 권노갑 선생에 따르면 때로는 ‘골프 코치’이기도 한 캐디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온다.


현재 한국 골프장 캐디의 법적 지위는 애매하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자영업자’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법률 용어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줄여서 ‘특고’.

이름부터 어렵다.


대법원 판례도 그동안 “캐디는 근로자 아님”이라고 못 박아왔다.

못을 박았으면 그대로 둬도 될 텐데, 국회가 기어이 그 못을 빼겠단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시행되면 이 법은 캐디는 물론,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배달기사, 대리기사, 보험설계사 등 무려 862만명이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

웬만한 광역시 인구보다 많다.


법의 취지는 아주 고결하다.

“계약서에 뭐라고 써 있든, 어쨌든 일하는 사람이잖아?”

그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것이다.

폼새나고 따뜻한 근로기준법의 옷을 캐디에게 입혀주겠다고 한다.

법이 시행되면 캐디들은


✔ 부당한 계약 해지 제한

✔ 폭염ㆍ사고 등 위험 상황에서 보호

✔ 직장 내 차별ㆍ괴롭힘 금지

✔ 보수 직접ㆍ전액 지급

✔ 최저임금 보장

✔ 퇴직급여

✔ 4대 보험 가입 등등


분명 좋은 일이 마구마구 생긴다.


그동안

“알바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던 이들이 드디어 정식 ‘근로자’ 클럽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니 캐디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 나도 근로자다!”라고 외쳐야 옳다.


그런데 말이다.

인류의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렇다.

“마음은 착해도 섣부르면 사람 잡는다.”


‘특고’의 가장 큰 장점은 뭘까.

바로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는 점이다.

라운드 많으면 돈 많고, 쉬면 돈 없다.

아주 자본주의적이고 솔직한 구조다.

그런데 근로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주 52시간만 일하기.

근로시간 관리.

근태 감독.

소득세 신고.

“오늘은 18홀만 치고 퇴근하세요.”

“추가 라운드는 다음 주에요.”

골프장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문제는 비용이다.

최저임금 보장, 4대 보험, 퇴직금, 안전장비…

골프장 입장에선 회계장부가 벌겋게 불타오른다.

결과는 뻔하다.

이 비용은 전부 이용객에게로 돌아간다.


그럼 누가 골프를 치겠는가.

2030은 이미 한 번 골프에 빠졌다가 “비싸고 오래 걸린다”며 테니스로 도망갔고,

테니스장 예약 전쟁 지친 젊은이들은 요즘은 그냥 러닝을 한다.

공도, 클럽도, 캐디도 필요 없다.

신발 하나면 끝이다.


비용이 더 오르면 골프장은 선택해야 한다.

✔ 캐디 줄이기

✔ 캐디 외주화

✔ 아니면… 로봇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 ‘아틀라스’가 공중제비 도는 영상을 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얘가 언젠간 내 7번 아이언도 건네주겠구나.”

자율주행 카트, 노캐디 골프장, 로봇 캐디.

이건 상상이 아니라 시간 문제다.


그런데 캐디들이 일자리를 잃는 건 작은 손실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골프 산업에서 침체는 더 빨라지고 기약없이 장기화될 뿐이다.


그래서 다시 그 꿈이 떠오른다.

아, 캐디 없는 골프라니!

하늘이시여,

내 유일한 취미인 골프를 삭막하게 만들지 말아 주소서!

그러나 쇠 얼굴의 캐디가 웃으며 말할 것이다.

“삐빅. 법은 통과되었습니당!”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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