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대통령 푸틴,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날 수 없는 이유 [김구철의 소프트파워 외교]
입력 2026.02.17 12:07
수정 2026.02.17 12:08
러시아 국민의 강력한 지지
청중 비용이론과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과 푸틴의 정치적 성장
크림반도 점령의 의미, 푸틴의 전성시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연합뉴스=EPA
러시아 국민의 강력한 지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날 수 없는 이유로, 우크라이나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꼽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발상지라는 역사 문화적 배경에서 시작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진주라는 것이다. 러시아 해군의 오랜 염원인 부동항도 우크라이나에 있다. 흑해 함대의 위용을 되살리고도 싶다. 유럽의 빵 바구니 또는 비옥한 흑토지대로 요약되는 식량 생산지, 석유와 석탄 등 광물 자원까지 우크라이나는 보물단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처지에서 물러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서구의 경제 제재로 어려운 가운데에도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우크라이나 병합에 보내는 강력한 지지다.
청중 비용이론과 우크라이나 전쟁
필자는 지난주 이 난에서 일본 자민당의 역대급 총선 승리의 원인을 제임스 피어론의 청중 비용 이론(Audience Costs Theory)을 원용해 분석했다. 민주 국가의 지도자가 국제적 이슈에 강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국내 정치 특히 선거에서 유권자(즉 청중)가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는 것이 이론의 골자다. 역으로 강한 발언을 행동으로 입증하면 청중(유권자)이 보상한다고 예상할 수도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대만 유사시 일본이 개입할 수도 있다고 공언하고, 중국의 다양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는 데 대해 러시아 유권자가 적극 지지하는 것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서구의 경제 제재 특히 석유 금수로 전쟁 비용의 조달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4년째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군 병력과 북한 무기의 지원을 받으면서까지 버티고 있다. 역설적으로 청중 비용이론을 가장 잘 입증하는 사례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인 셈이다.
전쟁과 푸틴의 정치적 성장
청중 비용이론 이외에도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매달릴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우선 푸틴 개인적으로는 푸틴의 정치적 성장의 단계마다 전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99년 8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 푸틴은 곧바로 ‘제2차 체첸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푸틴은 “변소에 있는 테러리스트라도 끝까지 찾아내 처단하겠다”라는 강경 발언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넉 달 뒤인 12월 31일 옐친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푸틴은 대통령 직무대행이 되었다. 2000년 2월, 러시아군이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함락하며 승기를 잡았고, 푸틴은 3월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푸틴은 이후 4년의 대통령 임기 2번을 보내고 3연임을 금지한 헌법 규정에 따라 측근 메드베데프를 허수아비 대통령으로 세우고, 일시적으로 총리로 내려앉아 있었다. 당시 조지아는 NATO 가입을 추진했는데, 푸틴은 러시아 안마당에 NATO 미사일을 용인할 수 없었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 러시아는 압도적인 해군과 공군력을 앞세워 조지아의 주요 도시와 항구를 폭격했고 닷새 만에 승리를 확정지었다. 조지아의 NATO 가입을 좌절시키고, 조지아 일부 지역의 분리 독립을 얻어냈다. 구소련 최악의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이란 상징성이 있는 조지아와의 전승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푸틴은 ‘스탈린보다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덤으로 얻었다.
크림반도 점령의 의미, 푸틴의 전성시대
대통령으로 복귀한 푸틴은 2014년 1차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여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푸틴은 이번에는 국가와 소속부대, 계급 장을 뗀 특수 부대원들을 투입해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편입해 버렸다. 제네바 협약에서는 ‘합법적 교전자’의 4가지 조건을 제시하는데, * 책임질 지휘관, * 식별 가능한 표지 * 공개적 무기 휴대 그리고 * 전쟁법과 관습 준수다. 계급장 뗀 부대 투입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었으나, 이미 끝난 일이었다. 러시아 국민은 승리에 환호했고, 러시아 국민의 푸틴 지지율은 80%를 넘나들었다. 푸틴은 러시아 국민의 뿌리 깊은 변방 콤플렉스를 치유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푸틴의 전성시대였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구소련 흑해 함대의 모항인 부동항 세바스토폴이 크림반도에 있다. 19세기 중반, 우리에게 익숙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이야기가 시작된 크림전쟁도 1년간의 세바스토폴 공방전으로 요약된다. 당시 러시아의 흑해 진출을 막으려고 영국, 프랑스, 튀르키예가 연합군을 구성해 맞서 싸웠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아주 유사한 형국이다. 2차 대전 때는 소련군과 독일군이 세바스토폴을 놓고 250일을 싸웠다. 2차대전 종전을 앞두고, 한반도 운명을 결정지은 역사적 회담도 크림반도 남부 연안에서 열렸다. 죽음이 임박한 루스벨트 대통령, 스탈린, 그리고 처칠은 원래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여름 별장 얄타 외곽 리바디아 궁전(Livadia Palace)에서 만나 전후 세계 지도를 그리고 한반도에 소련이 진주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성공의 후폭풍(Hubris of Success)
푸틴의 문제는 ‘성공의 후폭풍(Hubris of Success)’이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2001)》 와 《강자는 어떻게 몰락하나(How the Mighty Fall)》 두 권의 저서에서 위대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분석했다. 콜린스는 이 저서들에서 위대한 기업이 덧없이 사라지는 원인 1번으로 성공의 오만을 꼽았다. 어쩌면 푸틴도 러시아도 체첸 전쟁, 조지아 전쟁, 그리고 크림반도 점령 등 일련의 성공으로 오만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경제적 가치와는 별도로 러시아 국민에게는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러시아 국가 자체가 키이우 공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고 외치면서, 서자인 러시아가 적자 행세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 특히 푸틴으로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형제, 통합하자”고 외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장악해야만 한다. 그것도 이른 시일 안에. 그러나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전쟁은 특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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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